隨想의 窓<隨筆>

**落書 (39)

chung si yoo 4932 2022. 5. 10. 17:41

어머니날 주일을 전후하여 청각<聽覺>이 따갑도록 시각<視覺>이 쓰라릴 정도로 빈번<頻繁>하게 오든 電話와 kakaotolk의 사진 영상<映像>이 뜸 해젔다 자정<子正>이 가까와 veranda 出入門을 열고 바깥 corridor으로 나갔다 전면<前面>에 신축 중인 44~5층 ? Building에는 방마다 전등불이 환하게 켜저 있고 옥상에는 별 하나도 보이지 않는 칠흑<漆黑>같은 밤이다 캄캄한 밤에 은은<殷殷>한 불빛은 나를 감상<感傷>에 젖게하고 어릴때의 추억에 잠기게 한다 나는 어릴때 아버지의 목회<牧會>임지< 任地>를 따라 수 많은 학교를 전입<轉入>전퇴< 轉退>했다 그러니까 친구를 사귀고 친해지면 이별이다 카네시로이찌로 <金城一郞>는 아버지가 삼천포에서 신사 참배 거부<拒否>로 일본 경찰에 구금<拘禁>이되어 영어 <囹圄>의 몸이 되었을 때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창문만 열면 집 안이 훤히 내다보이는 선구동<仙龜洞>이웃집 친구다 그 당시 나는 백수건달<白手乾達>이 였다 아버지의 사상 문제로 학교 전학이 허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침이면 놀 친구가 없다 모두가 학교에 가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 아무도 없는 팔포<八浦> 바닷가에 가서 바윗 틈에서 게를 잡고 미역을 건지며 놀았다 외롭고 쓸쓸할 때는 노산에 올라가 심호흡을 하면서 파도<波濤>치는 수펑선<水平線>을 바라보며 답답함을 해소<解消>했다 김군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하교<下校>하면 책가방을 든체 창문을 녹크랬다 어린 마음에 내가 白手가 된 것에 연민<憐愍>의 정이 생겨 주로 무너건포<乾脯>를 가지고 놀로 왔다 김군 아벼지는 인쇄소를 경영했다 김군은 나와 같이 영화관에 가기 위해 아버지 몰래 극장 입장권을 program이 바뀔때 마다 2 장씩 가지고 왔다 그 당시는 그의가 전쟁 영화다 재미 있었다 그다음은 판돌<判乭>이와 일본인 병원 <大正病院> 앞 tomato 밭에서 tomato 서리를 했다 주로 판돌<判乭>이가 앞장 섰다 아버지가 1943 년 가석방<假釋放>이 되었다 시의원 11 명의 탄원서<歎願書>와 결찰 공의<公醫>의 病 보석<保釋> 신청이 주효<奏效>한 것이다 그 해에 우리집은 이사<移徙>를 했다

이사 가는 날 많은 교인들이 전송<餞送>을 나왔다 석별<惜別>의 정을 아쉬워하며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체읍<涕泣>을했다 눈시울이 눈물에 젖언체 ~자동차 창문 밑에 김군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학교 등교 시간이 한참 지난는데 지각<遲刻>을 하는데도 가방을 멘체 울고 있는 김군의 모습이 멀리서 기깝게 아련히<be dimly seen.> 떠올라 ~ 그립고 또 그립다 친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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