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05(화요일) 정국현의 아침斷想
정국현 歷史小說
불국토佛國土에 핀 예수
1. 구도자求道者의 길
⑮ 황무지에 뜬 새벽별 하나
‘경에 이르기를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지마라. 미운사람과도 만나지마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서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 만나서 괴롭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을 애써 만들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은 커다란 불행 사랑도 미움도 없는 사람은 얽매임이 없다 ’
부당취소애 역막유불애 애지불견우 불애역견우
不當趣所愛 亦莫有不愛 愛之不見憂 不愛亦見憂
시이막조애 애증악소유 이제결박자 무애무소증
是以莫造愛 愛憎惡所由 已除結縛者 無愛無所憎
점개가 법구경을 게송偈頌하며 모량리 들판을 지나 월성으로 돌아가던 그 시각, 경조는 대성을 찾아다니다 월성하늘을 바라보고 들판에서 홀로 서있는 대성을 만났다.
“예서... 무엇 하는 게냐?”
“어머니! 소자, 점개 선사님을 막 배웅하고 있었사옵니다.”
“달리 하문하신 말씀이라도......”
경조는 하려던 말의 말꼬리를 흐리고 말았다.
“......”
대성은 그런 경조의 거친 두 손을 다정스럽게 잡으며
“어머니! 불초不肖(아버지를 닮지 않아 못났다는 뜻. 자식이 부모님을 들어 이야기할 때 자신을 낮추는 말)한 자식이 감히 한 말씀을 올리겠사옵니다.”
"선사님으로부터 그간의 모든 정황을 다 들었사옵니다. 이제부터는 소자가 어머님을 편히 모실 것 입니다. 저에게는 저를 나아주신 어머님도 소중하지만 키워주신 어머님도 똑같아 경중輕重을 가릴 수 없사옵니다. 그리고 함께 두 분 어머님을 곁에서 오래오래 모시겠사옵니다. 미물인 까마귀도 부모님을 봉양(자오반포慈烏反哺)하는데 어찌 감히 소자가 소홀이 하겠사옵니까?”
자오반포慈烏反哺란 이밀李密(224-287)의 진정표陳情表에나오는 말이다. 진 나라 무제가 이밀에게 높은 관직을 내리자 이밀은 이를 사양했다. 무제는 이밀의 관직 사양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심정이라며 크게 화를 내자 이밀은 자신을 까마귀에 비유하면서 ‘까마귀가 어미 새의 은혜를 보답 하려는 마음으로 조모가 돌아가실 때까지만 봉양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청한데서 연유했다. 까마귀는 부화한지 60일동안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주지만 이후 새끼가 다자라면 힘에 부친 어미를 먹여 살린다한다. (이시진 본초강목 本草綱目)
경조는 구릿빛 얼굴에다 어깨가 딱 벌어진 헌헌장부軒軒丈夫가 된 아들을 바라다보며 보름달 같이 환한 자애慈愛로운 미소微笑를 지었다.
“그래... 고맙구나...고마워. 날이 차니 얼른 집으로 돌아가자꾸나.”
두 사람은 가을걷이가 한창인 논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고 지평선 저 멀리 복안장자 집에서는 밥 짓는 하얀 연기가 갈바람(가을에 서쪽에서 부는 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안개구름이 몰려왔다 사라지기 시작하는 이른 새벽부터 복안장자의 집은 하인들이 마당과 길을 쓸고 물을 깃고 음식을 장만하느라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윽고 대청마루에는 망상望床(높이고인 음식을 바라보는 상)이 차려지고 따로 차려진 주안상酒案床에는 신선로 ,찜, 냉채, 잡채, 약과, 육포, 어포, 떡, 과줄(한과),생과일, 장김치 술등이 차려졌다.
집안에는 복안장자부부와 경조와 대성이 비단 옷으로 차려입고 정당正堂 앞뜰을 나와 소슬(솟을)대문[고주대문高柱大門]앞에 서있었다.
멀리서 앞뒤로 화려하게 휘장을 두르고 지붕을 천으로 덮은 거기車騎(자가용 수레) 두 대가 달려와서 집 앞에 멈추어 섰다.
머리, 치마, 저고리가 모두 길고 풍성한 소매에서 묻어나는 여유로움이 엿보이는 夫人(왕후나 왕녀를 지칭함)이 수레에서 내려왔다.
부인은 눈가에 붉은 화장을 하고 붉은 연지와 입술을 발라 귀부인의 품격을 한층 높였고 고급 비단 자수를 곁들인 저고리 색동주름치마가 세련됨을 더하고 있었다.
“ 어서 오소서. 송희부인!”
복안장자와 모든 가솔들이 예를 올렸다.
송희부인은 경조를 향해 걸어 나와 경조의 거친 손을 꼭 잡았다.
“ 자네...그간 얼마나 고생이 심했었나... 이렇게 오면 지척지간咫尺之間(매우 가까운 거리)인걸...내 고생하는 줄 알면서도 찾아 올 처지가 못 되어 노심초사勞心焦思(몹시 애쓰면서 속이 타는마음)하고만 있었다네. 이따금씩 점개 선사님으로부터 자네와 대성이의 소식을 전해 듣고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네...”
“대성이 생각에 눈물로 매일 밤 베개 잎 을 적시고 기나긴 밤을 얼마나 하얗게 새웠는지...”
송희부인은 체통體統도 내려놓은 채 울먹이며 경조의 손을 놓을 줄 몰랐다.
이곳저곳에서 가솔들도 함께 훌쩍이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대성은 송희부인 앞으로 다가가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어머니!”
“ 소자가 바로....대성이옵니다.”
“어머니!”
(계속)
바릿밥 남 주시고 잡숫느니 찬 것이며
두둑히 다 입히시고 겨울이라 엷은 옷을
솜치마 좋다시더니 보공되고 말아라
(정인보1892-)
*바릿밥: 놋쇠로 만든 여자의 밥그릇의 밥
* 보공: 시체를 관에 넣고 빈곳을 옷가지 따위로 채워서 메 우는 물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