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현 >>의 아침마당

11 월 27 일 (월요일)<鄭國鉉>의 아침 斷想

chung si yoo 4932 2017. 11. 28. 09:02




이미지: 사람 1명, 정장, 밤, 실내

 


  11월 27 일 (월요일)<鄭國鉉>의 아침 斷想


불국토佛國土에  핀 예수

           1. 구도자求道者의 길



           ⑨ 황무지에 뜬 새벽별 하나



 점개는 부자인 6두품 아찬 복안福安을 떠 올리고는 격자형 도로망으로 잘 구획된 방리도로를 따라 왕경 서북방면 정운촌 淨雲村(모량리)으로 달음질쳤다.
복안장자의 집, 솟을대문 사이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는 하인들의 말소리가 마당에서 막 피우기 시작한 관솔불빛에 실려 어둠을 뚫고 조금씩 밖으로 세어 나왔다.

“대안하시게, 대안하시게!”
“선사님! 이 야심한 시각에 어인 일이시옵니까?”
  대문의 빗장 여는 소리와 함께 낮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복안 아찬님은 화천리에서 돌아 오셨는가?” 
  “그렇사옵니다.”
  “연통連通을 좀 넣어주게나. 급한 일이라고....”

  복안福安 장자는 서라벌의 왕성과 궁중사찰의 지붕공사에 필요한 모든 기와를 굽는 도성 제일의 화천리 가마와 장인匠人 와공瓦工들을 관리하는 와기전瓦器典( 도자기와 벽돌, 기와를 제조 하고 감독하는 관청) 수장이었다. 그리고 이곳 모량리에 윗대로부터 물려받은  많은 논밭도 가지고 있는 천석꾼 부자이기도 했다.

“ 선사님! 이렇게 우거까지 내림(왕림)하여 주시니 황공惶恐하옵니다.”
일각도 채 되지 않아 복안이 황급히 달려 나와 합장을 하며
점개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달빛마냥 자정慈情의 빛을 가득담은 그날 그 눈빛 그대로 이었다.

점개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왕실에서 흥륜사 지붕에 올릴 와당瓦當을 만들기 위해 흥륜사 고승 한명이 왕실의 제가를 받아 와기전을 방문한다는 기별을 받은 날 뜰 앞 하얀 북향화(목련)가 흐트러질 때였었다. 

와기전 회의실에서 점개를 접견하고 적이 실망이 앞섰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술법이 신라 최고이고 미남자라던 소문과는 달리 개사開士 점개의 초라한 작은 키에 안짱다리, 대머리에다 눈썹은 가운데로 쏠려있는 볼품없는 외모가 먼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러길 잠시......  두 눈에서는 안광이 빛나며 얼굴에는 활기와 매력이 넘치는 보살(부처 버금가는 성인, 불과를 얻은 이, 개사開士)의 현신이 눈앞에서 자신을 보고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음을 느꼈었다.
보현보살이 친히 찾아온 듯 했다.

“ 대안 !”
“ 대안 하소서!”
인사말을 건네는 점개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복안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눈앞에는 여인의 미소가 담긴 그림 한 장이 펼쳐있었다.

  “.................................”
  “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뭐에 쓰는 물건입니까?”
  “와당瓦當 수막새 그림입니다.”
  “수막새에 여인의 얼굴이라니요?”

그림 속 여인은 초승달처럼 생긴 시원한 눈매에 선 굵은 콧날, 수줍은 듯 엷은 염화시중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점개는 둥근 수막새를 연꽃도 아니고 도깨비도 아닌 여인의 얼굴을 기와에 새겨 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처음 보는 황당한 수막새의 그림이라 복안은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었다.

“..........................”
“ 악귀들이 달려들면 웃음으로 달래서 돌려보내게 말입니다. 하 하 하...”

부드럽게 말하는 점개의 목소리였지만 복안의 귀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강한 기운으로 다가와서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울렸었다.

와당瓦當이란 수막새와 암막새를 함께 이르는 말이다. 처마 끝부분을 막아 눈과 비는 쉽게 내려가게 하고 기와 밑 흙과 나무가 된 부분은 물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지붕 처마 끝을 장식하는 기와로 신라시대에는 연꽃(연화문)을 많이 사용했다.  장식 외에도 무언가를 바라는 주술적呪術的인 것과 나쁜 것을 물리쳐 달라는 벽사적辟邪的 뜻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복안은 와박사瓦博士(기와장인)들을 불러 화공이 그린 그림을 보여 주었다. 

“ 흥륜사와 영묘사에 올릴 새로운 수막새일세.  할 수 있겠는가?”
“........................”

이 일은 아무리 실력이 좋은 장인들이라도 장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기와를 제대로 구워 내려면 기와를 가져갈 사람, 만드는 사람 그리고 와기전 공방工房 수장의 기운까지 세 기운이 잘 조화를 이루어야만 좋은 기와를 만들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는 없겠지만 특히 와공들은 가마 앞에서 항상 겸손해야 했다. 와공들은 자신들의 운이 흙과 물과 불과 바람인 자연과 오직 정성뿐임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기와를 만드는 일이란 와공들이 점토를 채취하고 흙을 고르고 물을 섞어 반죽을 하고 흙으로 담을 쌓고 기와 크기에 맞게 흙을 자르고 바대치기(문양 넣기)를 한 다음 기와 끝 면을 다듬어 곡선을 만들고 볕 좋은 곳과 안 드는 곳을 교대로 2-3일을 말려 가마에 들인다.
그 후 초불로 연기로 말리는 말림불(연기 건조)을 넣고 난 후에 창구멍 3분의 2를 막고  시간이 어느 정도 경과하면 창에 작은 구멍만 남기고 봉하고 나무를 많이 넣는 대불을 놓는다. 그리고는 막은 불은 아궁이를 포함해 가마 전체의 모든 구멍을 막고 1000도 가까운 온도에서 20시간 기와를 굽고 잔불에서 72시간 식혀야 비로소 기와 한 장이 세상과 만나게 된다.

“ 이보시게 와박사들! 삼운 때문에 망설이는가?”
“ 선사님 그러하옵니다.”
“ 내 천기를 보아하니 우리가 만난 오늘이 삼운이 합한 최고의 길일일세. 이번 와당 작업에 분명한 것은 천신天神께옵서도 함께 하신다는 사실 일세.”

점개는 머뭇거리는 와박사들을 돌아다보고는 주문呪文을 읽어 축원을 하며 그 자리에서 육륜법을 행했다.

소향처자획리所向處自擭利라는 점괘가 나왔다.
가는 곳 마다 저절로 이익이 얻어진다는 말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 흥륜사와 영묘사 처마에는 수줍은 듯 해맑은 미소를 짓는 여인의 얼굴이 처마 끝에서 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점개의 축원이 있고 난 뒤로부터 복안은 벼슬길이 승승장구 乘勝長驅했고 집안이 두루 화목하며 하는 일마다 복을 누렸다.

복안은 점개를 사랑으로 안내했다.

“ 선사님! 이리로 오르시지요.”

두리(원)기둥에 매단 등롱燈籠이 남실바람에 ‘파르르’ 떨고 서 있었다. 
                                      (계속)

                   無題3 
                          
                                  望濟 鄭禧燮
               次地元來冠海東
               森羅萬物古都風
               月城芳草年年綠
               北岳丹楓歲歲紅
               王室興亡永劫夢
               民心不變古今同
               瓢岩行跡無尋處
               惟有無仍頌大功
            
                  
                   무제3
             
              차지원래관해동
              삼라만물고도풍
              월성방초연연록
              북악단풍세세홍
              왕실흥망영겁몽
              민심불변고금동
              표암행적무심처
              유유무잉송대공

         이 땅은 원래 우리나라 서울이라 
         삼라만물이 옛 도읍의 풍치인데
         월성의 방초는 해마다 푸르르고
         북악의 단풍은 해마다 붉도다
         왕실의 흥망은 일장춘몽이나
         세상민심은 변하지 않았도다
         표암의 행적은 찾을 곳 없어
         다만 생각 건데
         큰 공을 송축할 후대가 없었음을
                    (望濟集에서 譯: 정시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