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현 >>의 아침마당

11 월 15 일 (수요일)<鄭國鉉>의 아침 斷想

chung si yoo 4932 2017. 11. 22. 22:51


이미지: 사람 1명, 정장, 밤, 실내

 

11월15일 (수요일) 정국현의 아침斷想

정국현 歷史小說

불국토佛國土에 핀 예수

1. 구도자求道者의 길

③ 황무지에 뜬 새벽별 하나

원효는 오소리 새끼들에게 법문을 해 달라는 대안대사 말에 당황했다.
“스승님!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이놈들이 무슨 법문을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
원효는 순간 끌탕을 하느라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스승님! 저는 미물微物같은 존재임을 오늘 알았습니다. 감히 미물인 제가 어찌 같은 미물에게 법문을 설할 수 있답니까?”
원효는 죄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웃는 얼굴 수막새 기와를 닮은 미소를 지으며 원효를 지극히 바라보던 대안대사는 새끼들 중 한 마리의 목덜미를 들어 올려 발우에 있는 젖을 조금씩 먹여 주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 얘야...얼마나 배가 고팠니? 오늘은 젖동냥이 쉽지만 않았구나... 이리 온! 옳지 착하지!”
마치 어미가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듯 정성껏 먹여 주고 있었다.

“너도 언니들처럼 많이 먹고 빨리 자라야지...”

그렇게 한 마리 한 마리 친자식처럼 번갈아가며 젖을 먹여주며 쓰다듬어주고 트림까지 시켜주며 정성껏 법문을 했다.
원효는 모자지간母子之間 같은 대안대사의 지극한 돌봄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아....!”하고 탄성이 새어 나왔다.

“그래....저것이 바로 가피加被의 극치이구나.”

원효는 스승이 몸소 행동으로 가르침을 내려 주심을 알았다.

가피 加被란 더할 가加에 입을 피被이다.
달은 항시 밤하늘에 떠있는데 땅은 달빛이 비취어 밝은 곳과 그렇지 않는 어두운 곳이 있다. 빛을 받지 못한 땅은 어둠뿐이다. 땅은 그저 빛을 받아 반사할 뿐... 빛이 나에게 올 때나는 받는 사람이 되어 반사하기만 하면 그뿐. 나와 너가 서로 가피할 때 나와 너라는 구별은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비추어보아 서로 다르지 않는 생명임을 확인하는 순간 하나의 생명력(加被力)으로 작용한다.

원효는 가피는 내려 달라고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나임을 확연하게 깨달았다.

“말씀의 생명이 내게 비치니 나는 내가 아니요. 말씀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나인 것이야. 아-!”
......

원효는 대안대사에게 예를 올리고 남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찬 이슬을 머금은 재넘이바람이 불고 있다.
점개는 스승과 사형의 이야기를 떠올리고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어느덧 바리때만한 해가 고갯마루에서 올라와 점개의 헤진 분소의(糞掃衣)위에 걸터앉았다.

분소의糞掃衣란 글자그대로 풀이하자면 똥 분糞, 제거할 소 掃, 옷 의衣이다. 화장실 청소할 때 입는 옷이라는 뜻이다. 죽은 사람의 옷이나 쓰레기장에 버린 옷에 골라낸 천 조각을 이어 만든 남루한 누더기 옷으로 출가한 승려들이 소유에 대한 집착을 경계하기위해 만든 평상복이다.

산 아래 밭이랑에 농부들이 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 논길을 넘고 밭길을 건너 번갈아 주인이 되고 손님 되네”
(월천도맥 호위주객 越阡度陌 互爲主客)
소박한 농민들의 삶을 노래한 시구가 떠오르면서 점개는 그동안 공부해온 모든 경계가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것을 느꼈다.

“때-앵-때-앵-”

28번의 아침 예불을 알리는 범종소리를 들은 흥륜사는 다시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원측의 문인 흥륜사주지 도증은 당나라 유학파 학승이었다. 선지식에 항상 목말라 했던 그는 의상과 원효 그리고 점개를 친부모처럼 따랐다.
특히 그는 “성불 하세요‘라고 합장하는 사문沙門들보다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대안 하세요’하고 인사하는 점개 사숙이 더 좋았다.
점개 사숙은 어제 산중회의에서 사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방장직을 내려놓고 그가 피와 땀으로 증축한 흥륜사를 자신에게 물려주고 훨훨 날아가 버렸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이 경經을 손에 꼭 쥐어주고는 다시 운수납자의 길로 돌아 가버리고만 것 이었다.
그는 점개의 체취가 묻어나오는 ‘서청미시소경序廳迷詩所經’을 다시 음미하며 읽고 있었다.
어제 밤을 홀딱 새며 몇 번이나 읽었던 ......

‘그때 메시아가 하나님이 세상에 펼친 법을 말씀하셨다. 메시아께서는 천존이신 여호와의 진리를 설하여 말씀하시기를 “서로 다른 견해들이 존재하니 누가 능히 말할 수 있겠으며 경전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니 누가 능히 말할 수 있겠는가? 천존께서 [배후에서] 어떻게 헌신하여 존재하시는가? 천존께서 강림하시어 거처하시는 곳에서는 그 무엇으로 나타나시는가? 제불, 비인, 평장천, 아라한, 누가 능히 천존을 볼 수 있는가? 중생 가운데 거하여도 천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 어느 누가 위력이 있어 천존을 볼 수 있는가?”
그리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하늘에서 편안하시어 지극히 만족스러우셨다. 해가 뜨고 진 이래로, 하나님께서 거하시고 나타나심에 마음이 가고자하시는 모든 처소에 이르렀다. 몸이 밝고 즐겁고 고요한데 있으니, 하늘에서 모두가 제불이다. 이를 위해 성령께서 세상에 운행하시니 성령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하나님은 항상 고요하고 안락한 곳에 계시며, 인과응보가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세상 가운데 누가 성령의 움직임을 알겠는가? 다만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이로다. 어느 누구도 형상을 보지 못하며, 용모 단정함을 알아보는 이 없다. 누렇지도 않고 하얗지도 않고 푸르지도 않으니, 또한 아는 이가 없다. 바람은 강한 곳에 거하며 천존께서는 스스로 신위를 지니시고, 한곳에 머무시는 도다. 머무시는 곳은 포착하는 이 없고, 사생이 없고, 아름다운 모습이 없으며, 천지창조를 만난이래, 세상에 신위력 없음이 없었고 매번 오랜 즐거움과 신선의 인연을 받았다.
사람이 위급할 때 매번 부처의 명호를 부른다. 무지한 이가 많이 있어 신을 부름이 천존을 부르는 것에 비교되는데, 또한 지존지락旨尊旨樂이라고부른다.”

“천존이라...지존지락이라...지존지락이라”
몇 번이나 되뇌던 도증은 점개가 경經의 뒷장에 먹으로 휘갈겨 쓴 10원願(십계명)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천존이 말씀하시기를....”
(계속)

마음은 언제나 새벽같이, 입은 굳게 다물고
바보처럼 그렇게 가라
송곳 끝은 날카롭게, 그러나 밖으로 보이진마라
그래야 멋진 수행자니라 (示了黙:선시감상사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