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일 (월요일) 정국현의 아침斷想
정국현 歷史小說
불국토佛國土에 핀 예수
◎ 알려 드립니다:
소설 형식을 빌려 쓴 ‘불국토에 핀 예수’는 1300 여 년 전의 신라, 당나라의 역사歷史와 기독교와 불학佛學 그리고 유학儒學과 옛글古語들이 얽히고설켜 어렵게만 느껴졌을 것입니다.
읽고 받아드리기가 조금은 불편하시더라도 가급적 정사正史의 기록에 충실하기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해주시고 계속 함께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이야기 속으로:
1. 1956년, 8-9세기의 유물로 추정 되는 돌 십자가가 불국사 경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돌은 화강암이며 평면은 십자가형이고 단면은 사다리꼴로 되어 있었습니다. 돌 십자가는 가로 24.5CM, 세로 24CM, 두께9CM 좌우상하길이가 대칭이며 이형태는 초기 그리스 십자가 형태였습니다.
현재 이 돌 십자가는 한국기독교박물관에서 ‘경교 돌 십자가 NESTORIAN CROSS STONE’라는 이름으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경교란 ‘커다란 광명’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동방 그리스도교입니다.
경교는 당나라에서 신라로 학승들을 따라 들어와 여기저기에 복음의 발자국을 남겨 놓았습니다.
원효대사도 그의 경전에서 예수님을 법왕자(法王子)라고 표기하며 경교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려 승려 일연(1206-1289)은 그가 쓴 ‘삼국유사’에서 김대성이 두 생에 만난 부모를 효도하기위해(大城孝二世父母) 세웠다는 불국사와 석굴암- 이야기 속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3:38)’라는 ‘복음’을 담아 설화를 완성 했었습니다.
2. 1987년 8월 30일, 경북 영주시 평은면 왕유리 분처바위에서 머리가 떨어져 나간 5M 나 되는 암각상이 발견 되었는데 좌측 암면에 네모꼴로 새겨진 ‘도마’라는 히브리어가, 상의 가슴부분에는 십자가가 암각 되어 있고 상면 하단에는 ‘야소화왕인도자 耶蘇花王引導者’‘ 명전행名全行’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새겨진 명문에 대해서는 역사학자들이 지금도 설왕설래說往說來하고 있지만 암각상 만은 신라시대 경교의 유물로 밝혀졌습니다.
여조삭비如鳥數飛하는 마음으로 이제, 1300여년을 잠자던 유물들의 조각들이 하나, 둘 역사 속에서 걸어 나와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 하기 시작하는 ‘불국토에 핀 예수’의 이야기 속으로 함께 들어가 봅니다.
신라 고승인 점개가 기독교가 중국(당나라)을 거쳐 우리 땅(신라)에 처음 들어 왔다가 사라지고만 복음의 발자국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구도의 길을 찾아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길 위에서 길을 걷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 사람들의 마음 밭에 말씀의 씨앗을 뿌립니다.
그 사람들의 마음 밭에 천국을 심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가면서 점개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복음을 들고 동東으로 길을 떠나왔던 옛 선교사님들의 발자취가 바로 한권의 성경(聖徑:성스러운 길)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매일 이른 아침 한편씩 이어가는 이 이야기 속에서 저와 함께 주님을 만나며 ‘참 나’를 되돌아보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의 이야기]
1. 신라의 서울(현: 경주) 흥륜사에서 이절을 중건한 점개 선사가 배분으로 조카뻘 되는 유학승인 도증에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물려주고 참된 진리를 찾아 바람 따라 구름 따라 길을 떠납니다.
도증에게 자신이 애지중지한 누렇게 빛이 바랜 경經을 하나 쥐어준 채 말입니다. 그 경의 이름은‘서청미시소경’입니다.
구지 현대어로 풀어쓰자면 ‘메시아가 말씀하신 책’이라는 뜻입니다.
2. 길을 떠난 점개 선사는 길 위에서 스승인 대안 대선사의 행적을 현실처럼 다시 선명하게 떠올리고 장안에 크게 화제가 된 스승의 인사법인 “대안: 크게 편안하시라)”를 추억합니다.
그리고 대안 대선사가 매일 젖동냥을 하자 파계했다고 수군거리는 소문을 들은 사형인 원효대사가 대안 대선사의 움막이 있는 남산으로 따지러 올라 왔고 거기서 어미 잃은 오소리 새끼들과 함께 있는 대안대사를 만납니다.
대안 대선사는 원효대사에게 오소리 새끼들을 위해 법문을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3. 망설이는 원효대사를 보고 미소를 짓던 대안 대선사는 직접 평범한 말로 법문을 했습니다. 원효대사는 법문을 하는 대안 대선사의 진지한 모습을 보면서 그 길이 가피의 극치라는 것을 영과 육, 온몸으로 스승의 가르침을 배우며 대승의 더 높은 경지에 한 발자국 더 발을 들어 놓습니다.
그 시각 이를 회상하던 점개 선사도 길 위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습니다.
한편 흥륜사의 주지 도증은 사숙이 주고 간 ‘서청미시소경’을 찬찬이 읽고 나서는 뒷장에 점개 선사가 갈겨쓴 10원(십계명)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합니다.
4. 첫 번째 계명부터 열 번째 계명까지 다 읽은 도증은 효에 관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이를 전해 준 점개 선사에게 감사의 예를 올립니다.
점개 선사는 사벌주(상주)에 있는 백화산에 도착해서 폭포와 고모담이라는 소를 구경하다가 하나님이 만물을 지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살아 지금도 역사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5. 점개 선사는 산길을 따라 백화산 정상에 있는 금돌산성으로 올라갑니다.
요즈음 말로 수도 방위사령부 같은 역할을 하는 군사 요충지인 이곳 금돌산성 성문 누각에는 산성 수비대와 함께 화랑인 진골 김대정이 낭도들과 함께 서있었습니다.
그리고......
1. 구도자求道者의 길
⑥ 황무지에 뜬 새벽별 하나
성문 망루로부터 ‘쏴아-’ 솔바람이 강하게 점개의 가사袈裟 옷깃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날도 그랬었다.
흥륜사에 땅거미가 짙게 깔리기 시작할 시각, 솔바람이 일주문으로부터 강하게 회랑 옆 은행나무들을 흔들고 그 사이로 화급을 다투는 발자국소리가 함께 점개를 찾고 있었다.
“ 큰 스님! 큰 스님! 어디에 계십니까?”
회랑을 돌아 나오던 점개는 숨이 턱까지 찬 듯 헉헉거리며 한 여인이 강보를 들고 달음질치며 다가오는 곳을 보았다.
파진찬 김문량 집의 유모 경조慶組라는 여인이었다.
“어인일이시오?”
“큰스님! 큰일 났습니다. 왕궁에서 변란이 나서 파진찬 어른이 체포되고 구금 되었습니다.”
“변란이라니?”
안절부절못하는 경조를 데리고 가까운 승방僧房으로 들어갔다.
“불안에 하지 말고 안심하고 앉으시게...그리고 그..강보에 쌓인 아기씨는 누구신가?....”
머뭇거리던 경조는 강보에 쌓인 아이를 꼭 껴안으며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어서 말씀하시게....”
“ ...........................”
점개는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구나...터질 일이 터진게야. 터질 일이...’ 중얼거리며 비단강보에 쌓인 아이를 찬찬이 바라보았다.
아이의 정수리가 넓고 평평했다. 마치 큰 성城같았다.
“아이의 이름은 있으신가? 파진찬어른이 아이의 이름에 대해 뭐라 하신 말은 없으시고?”
경조는 고개를 두어 번 저었다.
점개는 경조 곁으로 바짝 다가앉더니 나지막한 소리로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으시게.”
“이 아이의 이름은 이마가 큰 성을 닮았다고 해서 자네가 혼자 이름을 지었네. 대성大城이 라고 말일세. 누가 물어봐도 자네가 낳은 자식이야. 아비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그리고 이 절을 나서면 곧장 모량리牟粱里로 가시게. 그곳에서 복안 장자의 집을 찾으시고.”
모량리는 모량부의 옛 지역으로 왕경(지금 경주 시가지)에서 서북쪽으로 약 7KM가 떨어진 들판이며 사로6촌 시절부터 최씨들이 세가를 이루고 사는 곳이다.
점개는 이 변란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일사천리一瀉千里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는 승방인 탐진당 담장에 나있는 작은 협문을 통해 경조를 흥륜사 밖으로 서둘러 내어 보냈다.
서라벌의 하늘은 붉디붉은 핏빛으로 물이 들어가고 말발굽 소리와 병사들의 함성소리가 지축을 흔들고 있었다.
신라 31대 신문왕 원년 681년 8월이었다.
(계속)
영화詅花 꽃을 읊다
지현후각 知玄後覺
화개만수홍 花開滿樹紅
화락만지공 花落萬枝空
유여일타재 唯餘一朶在
명일정수풍 明日定隨風
꽃 피니 나무 가득 붉은 빛요
꽃 지니 가지마다에 빈 허공이네
꽃 한 송이 가지 끝에 남아있으나
내일이면 바람 따라 떠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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