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想의 窓<隨筆>

~**落書 (163)

chung si yoo 4932 2023. 7. 1. 12:20

~**落書 (163) ~大義名分을 위한 批判의 태도가 嚴正하고 周圍 사람이나 權力을 意識하지 않고 事實에 대한 修飾이나 美化를 排除한 史筆을 春秋의 筆法이라 하여 쓸 것은 쓰고 삭제할 것은 삭제 하는 것을 필삭<筆削>이라 하고, ~ 필즉필<筆則筆하고 삭즉삭<削則削>하는 것을 말하는데 ~나는 우연히 書冊을 정리 하다가  故 이원영<李源永>목사가 생전 안동 서부 교회에서 主日 講壇애서 설교 할 때 사용하든 聖經책을 발견하여 page를 열어 보고 感慨無量했다 군데 군데 설교 제목과 본문을 만년필로 적어 쓰고 성경 구절에 줄을 긋고 傍點을 찍었다 옛날 1930 년대 선친<先親>이 사용하든 성경책은 管理不實로 행방이 杳然하여 찾을 수가 없는데 목사님의 성경책은 자녀들이 잘 보관하여 원본 그대로 복사 製本하여 나도 그 귀한 성경책 한권을 寄贈 받아 소장하게 되었다 실은 故李源永 牧師는 나의 사장<査丈>(나의 여동생의 媤父)어른이다 本貫은 진성<眞城>이고 號는 봉경<鳳卿>이다 退溪 선생의 14 대 孫으로 목사님의 출생~(1886 -1958 ) 년 목사님의 生涯 중 어릴때 漢學과 신식교육을 받고 장성하면서 나라의 獨立과 民族意識 昻揚에 透徹했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하여 국가 건설에 기여하고 교인들의 信仰心의 鼓吹 向上을 위하여 교회 우상 숭배인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일본의 국책인 침략 전쟁과 창씨 개명을 반대하여 일본 官憲의 要視察 인물로 주야로 사찰과 감시를 받았다 ~목사님은 말보다 행동이 앞서 1919 년 예안<禮安>에서  3.1 운동을 주도한 嫌疑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어 심한 拷問과 고초를 껶었다 獄中에서 특기할 사연은 같은 방에서 옥살이 하던 이상동 장로 (임시정부 국무령 이상료의 동생)의 전도를 받고 기독교에 歸依~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 촐옥 후 平壤 長老會 神學을 졸업하고 영주 중앙 교회 / 용산 교회 / 신세교회 (현 동부교회 ) / 안기교회 (현 안동서부교회) / 등에서 당회장으로 牧會에 盡力 邁進했다 日帝의 神社參拜 强要와 創氏改名 拒否로 1938 년 목사직시무사면<牧師職 視務 辭免>을 당했다 1939 년부터 1945 년 8.15 광복이 될때 까지 일본 국가 정책과 전쟁에 불 협조한다는 죄목으로 수개월씩 4 차레나 구속 투옥 되었다 [ 朝鮮 예수교 장로회]는 친일 배교 아부하든 목사들은 1937 년 중일 전쟁 勃發 이후부터 1945년 종전 까지만 해도 日帝에 얼마나 헌신 ~ 협조하고 협력 했는지 ~가당치 않다 그 例로 <戰勝祝賀會>~604회 /<武運長久>~기도회 8954회 / 時局講演會~ 1355회 / 등을 開催하고 國防獻金을 모아 헌납한데 이어 1942 년에 육군과 해군에 비행기 한 대씩과 기관총 7정을 헌납하고 같은 해에 1540 개의 교회종을 떼어 받치고 정춘수라는 자는 1944 년 경성/ 재물포/ 평양 / 원산 /강경/등 34 개 교회를 폐쇄<閉鎖>하여 그 재산을 팔아 비행기 3대를 헌납 할 것을 결의 했다 이와 같이 邪惡하고 奸邪한 목사들이 行悖가 跋扈 橫行했다 이와같이 어지러운 판국에 사문난적<斯文亂賊>들의 비리를 剔抉하고 목사의 정당한 권리와 責務를 찾고자 ~광복 후 목사님은 경산 경찰서 유치장에서 釋放된 후 경안노회를 정비 복구하고 다섯 차레나 老會長 직을 역임했다 1946 년 경안 고등 성경 학교 ( 현 경안 신학 및 대학원 )을 설립하고 교역자 양성에 勞心焦思 盡心竭力했다 목사님은 1954 년에는 제 39 회 대한 에수교 장로회 총회장으로 被選 推戴되어 [신사 참배 취소 성명을 ] 발표 했다 당시 총회시 신사참배를 논의하는던 시간을 가진바 제 5 일 째 되는 새벽 시간에 김윤찬 목사는 설교를 마친 후 목사님을 향하여 감사와 수고의 뜻을 표하며 “무엇이든지 옥고에 대한 언명을 듣고 싶어 했다 ” 그 때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때 나의 잘한 것도 자랑 할 것이 없고 주의 종으로 다만 마땅이 해야 할 의무를 다한 것 뿐입니다 <갈 6: 14 >” 해방 후 獄中受難을 誇張하고 자랑하는 사람이 많은데 비하여 얼마나 겸손한 대답이 였는가 ...

이제 목사님은  召天하시어 주님 곁에 가신지 75년이 되었으니 목사님의 살아 생전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그 容貌도 볼 수가 없고 설교 말씀도 들을 길이 없다 그러나 목사님의 자필로 남긴 설교 原稿 내용을 통하여 그 高潔한 인격과 博學 多識한 성경 註解로~말씀의 宣布 實踐에 애쓰며 오직 주님의 十字架만 바라보고 日警의 모진 毆打와 拷問과 侮蔑로 침 뱉음을 당했으나 唾面 自乾하는 寬裕 溫厚한 심정으로 忍耐하며 믿음을 지켰다 解放 후 日帝의 監獄에서 出獄하여 설교한 많은 설교 중에서

* [ 복있는 苦生]* 이란

題目 (本文 벧전 3:13~17)의 내용의 大旨를 소개하면

1. 義를 위하여 받는 苦生

2.良心대로 行하다 받는 苦生

3.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苦生

4.하나님의 뜻대로 받는 苦生

 說敎~한 편을 소개하고 ~

*기타 特記할 것은 많은 설교 要旨를 적은 내용이   목사님이 강단에서 설교하던~ 성경책 속에  지금도 책 갈피마다 添紙와 間紙가  揷入 保存되여 있고 . 중요한 聖句마다 傍點과 点, 線으로 줄이 그어져 있다  참으로 後進들이 聖經을 參考하는데 도움이 되는  貴重한 資料가 된다.

 

~그리고 당시 학교와 교회를 세워 신학문을 가르치고 기독교를 전파한 강은규 의사 (전도사)는~ 많은 사람들이 賣國賣族하고 배교하는 것에 悲憤慷慨하여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 형무소 사형장에서 남긴 絶命詩~

斷頭臺上

猶在春風

有身無國

豈無感想

단두대위에 올라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구나

몸은 있어나 나라가 없어니 

어찌 감회가 없어리오

 

 

                            *故 李源永 牧師가 視務하던 安東西部敎會 90周年 紀念 禮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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