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禧燮 牧師

鄭禧燮牧師의 淸道豊角松西長老敎會<3>

chung si yoo 4932 2013. 6. 2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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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鄭禧燮 牧師의 淸道 松西 長老 敎會 篇<3> (0점) | 鄭禧燮목사님[회상] 2012-08-24
오후 8:57:03


 

 

 鄭禧燮 牧師의  ㅡ memorandum 中 一部  拔萃

 

淸道 豊角 松西 長老敎會篇 <3>

 

豊角 面事務所에서 淸掃夫로 일을 始作하여

골목마다 쓰레기 더미를 깨끗하게 쓸고 길 한복판에 散在한 소똥과 

개똥과 닭똥   말 오줌까지 삽으로 긁어 말끔히 치왔다

하나님은 인간을 創造하시고 征服하고 다스리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勞動하라는 뜻이다  詩篇 128편 1-2절에는 “여호와를 敬畏하며 그 道에

行하는 者마다 福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手苦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福되고 亨通하리로다”고 했다. 손이 수고한대로 家族이 먹을 것이니

일을 마치고 난 후의 成就感과 기쁨은 말로 形容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꼐서 이 患亂의 떄에 너무나 좋은 employment 를 주셨다

淸掃는 單純한 肉體 勞動이니 世上 苦難과 苦痛과 憂愁 思慮는 머리 속에서  

아예 생각 할 나위 없이 하양게 비우고 오직 여호와를 敬畏하며 그 眞理를 지키는

喜悅이다 그리고 日本이 곧 敗亡할 것을 믿고 靈的인 勞役을 爲해

祈禱하는 마음으로 찬송가 371 章 "三千里 半島 錦繡 江山"을 힘차게 불렀다

 

몇일을 일한 후 主日 날이 돌아왔다

禮拜 時間 30 分 前에 敎會에 到着했다

聖守 主日하며 강단에서 말씀을 선포하든 牧師가

囹圄의 몸에서  풀려나와  하나님의 敎會에서 드리는 첫 예배라

實로 가슴이 벅차고 感慨가 無量했다

그저 感謝의 눈물이 잎섰다

우리가 不義한 者들에게 苦難을 받으며

獄 中에 있을 떄도 그리스도의 고난을 한 번 다시 생각 했다

 

"그리스도꼐서는 한番 罪를 爲하여 죽으사 義人으로서 不義한 者를

代身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引導하려 하심이라

肉體로는 죽임을 當하시고 靈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靈으로 獄에 있는 靈들에게 傳播하시니라 <벧전 3:18>

 

 

 

 

내가 예배에 참석한 송서 교회는 오랜 tradition 이 있는 교회로

교회의 system 이  완전히 잡혀 있었다

淸道 豊角 松西 長老 敎會의 創立 年代는 ~

慶北 敎會史에 依하면 1899 年이나

實際 創立은 6 年 前인 1893 年으로 推定된다

敎會를 세운  김경수는 大邱에서 배위랑(W. A Baird)>宣敎師에게서 

福音을 迎接하고 淸道에 돌아 왔어나

그 떄는 淸道가 未傳道 地域이라 敎會가 없었다 그는 淸道에서 慶山 沙月

敎會에 다니며 淸道 豊角에 敎會를 設立하기로 작정하고 宣敎師의 도움

없이 祈禱하며 自力으로 敎會를 세우고 새 信者를 敎育하고

禮拜드리고 傳道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當時 敎人의 대표로 김양석 領袖와 조사여가 執事 職을 맡아 奉仕했다

信者의 믿음으로 自發的으로 세워진 慶北 最初의 自生的 敎會다

어려움 가운데서 이미 建物이 세워지고 設立된 敎會이지만  獨立 敎會로서  

敎會의 認準이 必要하여 1899 年   안의와(J. E Adams ) 宣敎師를 敎會

設立者로 하여 老會의 認準을 받았다

1943 年 당시 松西 敎會는 平陽 神學校를  졸업한 K 강도사와 金鶴奉 長老

金溶快 長老 趙龍水 領袖와  한분 安 按手 執事와  전도부인인  朴 부인이 

협력하여 교회를 잘 使役하고 있었다 

주일 대예배 때는 100 여명의 교인이 점심 도시락을 싸서 가족끼리

짝을 지어 삼삼오오 遠 近 角北面 角南面 伊西面 등  各處에서 예배드리려 왔다

당시에는 어느  敎會나 다 廚房이나 親交室이 없었다 집이 먼 성도들은 ~

주일 대예배를 마치고 목사관 대청 마루나 전도부인 숙소나 교회 앞뜰

잔디밭에 혹은 나무 그늘에 가족끼리 앉아 식사를 나누었다

참으로 정겨운 모습이었다

創世時 Eden 의 모습 그대로다

순결한 성도들의 使徒行傳的 交際다

사발에 보리밥을 꼭꼮 눌러 담고 그 위 종지에 고추장과 된장을 넣어 담은  

도시락을 풀고 풋고추와 상추를 된장에 찍어 쌈을

한 입 가득 싸서 먹었다 

좀 생활이 나은 성도의 도시락의 special 반찬은 삶은 달걀과 새우젖과

김치다 달걀 한개와 는 아버지와 아들의 몫이고 김치는 아낙의 몫이다 손으로

김치를 쭉 쭉 찢어 밥 숟가락에 얹어

질겅 질겅 맛있게도 씹어 먹었다 

먹을 것 없는 戰時에

하나님이 주신 日用 할 糧食으로 ~  

自然의 無公害 食材로  well-being 食事를 했다

 

金溶快 長老와 金鶴奉 長老는 내가 日本 宣敎師로 가기 전 부터

慶北 老會에서 같이 使役한 믿음의 형제라

두 손을 꼭 잡고 너무나 반가와하며 나의 獄苦를 慰勞했다

그리고는 다음 주일 說敎를 부탁 받았다

 

다음 날부터 面 淸掃夫의 一擧手 一投足이

面民들의 주시의 대상이 되었다

내가 牧師인 것을 半信 半疑했든 住民들이

내 身分을 確實히 안 것이다

憂慮와 期待가 썪인 視線들이 었다

나는 골로새 書 3 章 22 節 以下의 말씀이 자꾸 생각 났다
그래서 종이 한 장 줍고 쓰래기 한 통을 비울 때도

크고 작은 일을 莫論하고 誠心 誠意를 다 했다

 

"종들아 모든 일에 肉身의 上典들에게 順從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者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主를 두려워하며

誠實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主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

 

長老님들에게 說敎를 부탁 받은 주일이 돌아왔다

나는 淸掃夫의 uniform 을 벗고 正裝을 하고 講壇<pulpit>에 섰다

敎會가 閉鎖된 후 참으로 오래간 만에  公式 禮拜의 說敎다

이곳은 山間 僻村이라 日本 警察官이나 高等係 刑事가 예배에

臨席하여 說敎에 꼬투리를 잡아 說敎者를 威脅하고 中止시키는

일은 없었다

 

說敎의 本文은 [베드로 전서 4 :12-13 ]의 말씀으로            

題目은 [試鍊의 祝福]이 었다 

當時 朝鮮은 日帝의 植民地로 農民들의 생활은 實로 慘擔했다 

供出이란 名目으로 秋收한 穀物은 다 收奪 당하고 草根 木皮로

粥을 쑤어 겨우 延命하며 餓死를 免했다

그리고는 强制 徵用과 勤勞 動員으로 아무 報酬도 없이 허리가 휘도록

重 勞動을 당했다  입을 옷도 신을 신발도 없었다

또한 基督 敎人들은 神社 參拜를 拒否한다는 것과 

日本의 最高 神인 天照大神을 안 믿고 예수를 믿는다는 罪目으로 

裁判도 없이 拷問하고 拘禁했다 

日本 官憲들의 嘲弄과 揶揄와 蔑視 속에 이유도 없이 銃개머리판으로

수도 없이 두둘겨 맞고 구둣발로 촛대뼈를 까였다 實로 極甚한 試鍊이다

특히 敎會를 逼迫하고 聖徒들에게 不利益을주고 에배도 自由롭게

보지 못하게 主日 날 公式 行事를 하며 酷毒한 彈壓을 가했다

試鍊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聖徒의 믿음을  堅固하게 한다

試鍊은 '불시험' purwvsei(퓌로세이)처럼 아주 강하나 純金을 얻는 것이니

<시 66 :10><잠 27 :21><계 3: 18>

試驗 당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지 말고 즐거워하라

그리고 ajgalliwvmenoi(아갈리오메노이) "기뻐 하라

苦難의 끝은 즐거움과 기쁨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恥辱을 당하는 것은

그 자체가 福이다 <마 5 : 11~12>

義를 위하여 고난을 이긴 자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머물러 계신다

試鍊은 聖徒에게 臨하시는 하나님의  祝福이다

試鍊이 하나님꼐 영광이 되게 하라는 要旨의 說敎를 했다

불과 같은 성령의 臨在로

메마른 땅에 生水의 江이 흘었다

 

 

    

 

                 <3 篇 >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