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禧燮 牧師

鄭禧燮牧師의 淸道豊角松西長老敎會<1>

chung si yoo 4932 2013. 6. 22. 11:05
블로그 카테고리 : 鄭禧燮목사님[회상]  
 / 백개씩보기

 

 정희섭[鄭禧燮]목사의 淸道 松西 長老 敎會 篇<1> (0점) | 鄭禧燮목사님[회상] 2012-08-19
오후 6:51:15

 


 

 

 鄭禧燮 牧師의  ㅡ memorandum 中 一部  拔萃

 

淸道 豊角 松西 長老敎會篇 <1>

 

 

泗川 警察署에서 假釋放된 後 被疑者 居住地 制限 措置로 任意로 移徙할 수 없었으나  敎會 閉鎖로 因한 生計에 어려움이 있어 不得不 檢察의 許可를 얻어 臨時 居住地를

淸道로 豫定하고  祈禱하던 中 ~淸道郡 伊西面 九羅洞으로 移徙하기로 決定했다

九羅洞은 潘氏의 集姓村으로  同壻가 里長으로 居住하는 곳으로 나의 딱한

어려운 事情을 알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日帝의 要 視察 人物인

나를  protect 하여 그곳으로 이사 하도록 勸誘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居處할 茅屋

한 채를 貰로 얻어 놓고 기다린다고 했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

淸道로 移徙한 理由는 同壻의 懇切한 勸誘도 있었지만

첫째가 歸巢本能이다

牧師가 任地 없이 遊離 彷徨할 때는 돌아갈 곳은 故鄕이다

淸道는 나의 第二의 故鄕이다

젊을 때 入信 前 警察官으로 勤務했던 곳이기도 하고 退任 후 醫療院을

開設하여 많은 患者를 돌보던 곳이라 地域 人士들과의  humanrelation이

좋은 곳이고

둘쨰는 傳道하고 祈禱하기에 適合한 곳이다

淸道는 本是 儒林과 佛敎의 고장이나 人心이 醇厚하고 正直하며 福音을  잘 받아 드린 고장이다

배위랑<W. M. Baird>宣敎師의 記錄에 依하면 1893 年에 大邱에서

險하기로 所聞난 八助嶺을 서경조 조사와 馬夫 朴在龍 少年을 帶同하고 

말을 타고  재를 넘어 

淸道로 넘어와  쪽福音書를 傳했는데 

배위랑 <W.A.Baird>宣敎師의 傳道를 받은 김경수가 

1899 年에 松西敎會를 創立하고 1905 年에 明大敎會<溫幕敎會>가 서고

1906 年에는 안의와 <J.E. Adams>宣敎師의 主導로 박곡 敎會가

設立된 고장이라 이미 福音의 씨가 뿌려진 곳이라 福音 傳道가 쉽고   

가지산 雲門山 琵瑟山 華岳山 등

風光이 明嵋한데다 山勢가 秀麗하고 奇岩 絶壁이 우뚝 솟고 溪谷 間에

흐르는 물이 맑아 山속 어느 곳이나 기도하기에 너무나 좋은 곳이라 

좀더 懇切한 禱告와 소원을  위해  淸道를 選擇했다  

셋째는 一言以蔽之하여~  살기 좋은 고장이다

淸道는 淸麗大道라 하여 사람들의 마음이 道德的으로 맑고 아름다운데다~ 

三淸<산이 맑고 물이 맑고 사람이 맑고>三無<도둑과 역적과 패륜아가 없다는 >의 고장으로 <道不拾遺淸道>~ 길에 떨어진 物件은 주어가는 사람이 없다는

글자 그대로 淸廉하고 깨끗한  淸道이기 때문이다

 

移徙는 三千浦에서 truck으로 晋州까지 와서 慶全線을 타고 三浪津驛에

내려 다시 京釜線을 갈아 타고 淸道驛에 下車하여  또 truck으로 九羅洞까지

長長 30 里 非鋪裝 道路를 塵埃 속을 구비 돌아 호롱불도 꺼진 ~ 깜깜한  

夜深한 밤에 太古的 幽界와 같은 개도 짖지 않는 寂莫한 마을에 到着했다

 

그때는 2次 世界 大戰의 마지막 生死를 건 激浪의 渦中으로 日本과 朝鮮

어느 곳이나 國民 學校學生까지 鬼畜 美英 擊滅이란 slogan을 내 걸고

미치광이처럼 最後의 發惡을 할 떄라 戰爭을 위해서 모든 것을

統制했다 그 중에서도 汽車 타기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이 어려웠다

一定한 時間도 間隔도 없이 發着했다 燈火 관제로 汽車마다 불을 끄고

軍需 物資만 가득 가득 싣고 滿州와 中國으로 輸送할 때였으나 

多幸이 驛長의 好意로 우리 가족은 客室에 타고 올 수가 있었다

三浪津에서 내려 여관에서 一泊하고 만 2 일간의 旅程이였다

집은  기둥이  구부러저 肋骨처럼  앙상하게 드러난  기울어진 이끼가 낀 

三間茅屋이 였으나   里長인同壻와 妻兄 家族들이 반갑게 마중해 주었다

집이란 참 좋은 곳이다 受監 中 늘 그리웠던 곳이다

한 家族이 慈顔愛語하며  恩惠와 사랑을 根本된마음으로  團欒하게

같이 살고 내가 正心誠意로 自由롭게 活動할 수 있는

安定된 空間이 있기 떄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맑은 空氣를 마시며 마음끝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 할 수가 있었다

기도할 때마다 나의 situation 을 따라 나에게 潛在的 可能性을 包含한

能力 <capacity >을 주시는 말씀은 堅固한 믿음이다 ~

 

 "하나님이 우리를 爲하시면 누가 우리를 對敵하리요 "

"누가 能히 하나님이 擇하신 者들을 訟事하리요 "

"義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定罪하리요"~ 

 "우리 主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感謝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兄弟들아 堅固하여 흔들리지 말며

恒常 主의 일에 더욱 힘쓰는  者들이 되라 이는 너희 受苦가 主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 15:58>

 

차츰 마음이 安定되고 나니  明心寶鑑의 한 句節과 같이 知足常樂하여

초가집도 편안하고 또 성품이 安定되면 나물국도

香기롭다 <心安茅屋穩 性定菜羹香>는 말처럼 漸次 모진 拷問의

後遺症에서 벗으나가는  것이  實感난다

 

그리고 祈禱의 시간이 조금씩 더 延長되어 갔다

日本~豊橋. 東京. 平陽, 三千浦. 玄風 各...

섬기던 敎會를 위한 기도다

 

내가 이곳 九羅洞으로 이사 온 후

일 주일도 체 되지 않았는데

반가운 첫 손님이 찾아 왔다

釜山 水晶 聖潔 敎會에 視務하고 있는 柳道譯 牧師다

戰爭 中 交通便이 最惡인 두메 산골에 貨物 列車에 몸을 싣고

淸道 驛에서 徒步로 고개를 넘고 내를 건너 夕陽의 그림자가

사릿문에 길게 느러진 늦은 午後에 찾아 온 것이다

戰鬪帽에 바지에는 脚絆<galters>을 치고 쯔매애리[詰襟]~

목닫이 양복 인 ~

khaki色 國民服 차림이다

얼마나 반가운지 쫓아나가 손을 잡으니

有朋이自遠方來하니 不亦說乎아라는 말이 더욱 實感이 난다

柳道譯 牧師와의 因緣은 各別하다

내가 도요하시,<豊橋>敎會에서 使役할 떄 東京 靑山 學院을

卒業하고 東京 holineness 聖書 神學校에 在學하면서 執事 職을

맡아 忠誠되게 敎會를 도왔다

柳道譯 牧師는 安東 河回 出身으로 屛山書院에서 어릴 때부터 漢學을

修學한 漢學의 大家다 四書 三經을 비롯하여 孔子家語 春秋左傳

및 古文眞寶 前集 12 卷 後集 10 卷을 문장의 뜻과 典故를 說明하매  

滔滔히 흐르는 江水와 같이 막힘이 전연 없었다 萬若 그 當時

科擧 試驗이있어 應試했다면 壯元 及第할 實力이다

나와는 同役者인 同時에文友다 아침에 

새벽 기도가 끝나면 저녁 늦게까지 敎會 事務室에서 談論의 꽃을 피왔다

李白 .杜甫. 白居易. 陶淵明 . 歐陽修. 杜牧. 등 有名 詩人의 作品

感想과 評價다 時間 가는 줕 몰랐다 우리는 文通을 할 떄 한글 토시

하나 없는 純漢文으로 便紙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自作 漢詩도 韻을

같이하여 주고 받은 사이다

柳道譯 牧師도 1943 년 나와 같은 시기에 日警에 被檢<arrested>되어

獄苦를 치르고  假釋放되자 바로 내 安否가 궁금하여 직접 얼굴을 보기

위해 찾아 왔다고 했다 出獄을 해보니 敎會는 閉鎖되고 信者들은 뿔뿔이

다 흩어지고 견딜 수 없는 衝擊에 主 안에서 한 同役者요 兄弟요

漢文을  같이 演習하고  學究 窮鑿하는  同僚로서 속 시원하게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와 같이 있으면 마음이 平安하고 潤澤해진다고 했다 

家語云 與好人同行 如霧露中行 雖不濕衣 時時有潤 

 

 

                                <1> 篇 了

      << 지금의 청도 풍각 송서 장로 교회 모습 >>  2017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