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禧燮 牧師

鄭禧燮牧師의 淸道豊角松西敎會<4>

chung si yoo 4932 2013. 6. 2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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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鄭禧燮 牧師의 淸道 松西 長老 敎會 篇 <4> (0점) | 鄭禧燮목사님[회상] 2012-09-02
오전 12:07:21

 

 

 鄭禧燮 牧師의  ㅡ memorandum 中 一部  拔萃

 

淸道 豊角 松西 長老敎會篇 <4>

 

 

禮拜의 順序를 따라

祝禱를 마치고

講壇를 내려왔다 

閉會를 宣言했는데도 聖徒들은 가지 않고 나를 둘러섰다

다음 主日 說敎를 또 附託한 것이다

k 講道師의 立場을 생각해서 極口 辭讓했으나 莫無可奈다

金鶴奉 長老에게 確答을 廻避하고 집에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에

두 長老와 領袖가 함께 찾아 왔다

敎會 代表로서  正式으로 擔任 牧師 請聘書를 만들어 온 것이다

記憶에 남는 것은 農村 敎會의 實情으로는 너무나 過分한 謝禮金이였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는  戰時 下에  敎人들의 生活은 눈물겹도록 

艱難하고 너무나 窮乏했다  그런데도 敎會가 最善을 다한 것이다

당시에는 農村 敎會 十一條 獻金도 現物이고 牧師 謝禮費도 主로  現物로

支給했다

牧師 請聘書에는 每月 식구 수대로  白米 一斗式  炊事用 火木 二牛車와

現金으로는  白米 二斗를 換算한 金額과 副食 飯饌으로 김치와 간장을

담그어 주고 bonus 로 年 二個月분을 追加해서 支給한다는 條件이 明記

되어 있었다

그리고 慶北 老會의 牧師 請聘 許諾書도 添附했다

예수교 長老會 憲法에는 다른 敎派 牧師나 외국에서 任職한 牧師는 

一年 間은 敎會 請聘을 받을 수 없고 治理權을 가지지 못한다는  

但書가 있는데 그것을 빼고 元來 視務했던 慶北老會 牧師로 復職 處理가

된 것이다 

 


정재순 목사

 

 

連이어 慶北 老會長인 鄭在淳 牧師의  便紙를 받았다

鄭在淳 牧師는 당시 우리  門中에서  唯一한 牧師로 叔父 行列이다

어릴때는 아저씨로 呼稱했다 1915 年 平壤 神學校를 卒業하고 
安義窩 [안의와]<Rev. James Edward Adams>
宣敎師와 같이 協力하여

未宣敎 地 인慶北 地方을 傳道하여 1912 年에 故鄕인 慶山 慶山面 삼북동에 

삼북 교회를 設立하고 慶山 慈仁面에  북사 敎會를 설립했다 그리고  

1912 年에는 大邱 新町敎會<西門路 敎會>를 설립하고 牧師로 視務하며

3.1 만세 운동을 主導하다 2 年間 獄苦를 치렀다 1918 年에 慶北 老會長을

歷任하고 1923년 安東敎會를 視務할 떄  慶安老會長을 역임했으며

慶安 中學院을設立하여 人材 養成에 힘썼다

1939 년과 1945 年에 다시 慶北 老會長을 重任한 慶北 地方 敎役者들의

民族 思想의 求心的  leader 로서  信仰의 模範的 先進이며 mento 이였다 

내가 玄風 敎會와 院橋 敎會 助事로 視務할 떄와 東洋 宣敎會에서

日本 宣敎師로 派送될 떄 많은 助言과 도움을 받았다

便紙의 內容은 나의 獄苦를 慰勞하고 한 老會에서 事役하게 된 것을

기뻐하며 앞으로 老會 傳道 牧師로 일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해 왔다

그러나 懇切한 松西 敎會의 請聘을 拒切할 수 없어

請聘을 許諾했다

 

내가 松西 敎會에 擔任 牧師로 赴任한 後 첫 새벽 祈禱會를 引導 했다

聖靈의 뜨거운 불이 떨어졌다

~**[悔改와 罪 赦함]~**에 대한 說敎였다

J 領袖가 禮拜堂 마루를 치며 大聲 痛哭을 했다  

說敎를 마치자 눈물을 훔치고 J 領袖가 일어섰다

"牧師 님 우리집 앞 新作路 邊의 第一 좋은 上畓 두 마지기를

이 時間 하나님꼐 받치겠습니다 "

聖徒들이 이 瞬間 아멘과 ~ 할렐루야~ 소리와 拍手가 搖動했다

感激의 時間이 였다

그런데 한 낮이 지나고 J 領袖가 牧師館에 나를 찾아 왔다

"牧師 님 새벽에 하나님께 바친 그 논을  물리야 되겠습니다

 男兒一言重千金이라 저는 도저히 하나님꼐 돌려 달라고 말 할 수 없습니디

牧師 님이 저를 代身해서 논 두마지기 反還  祈禱를 해달라는 것이다

그것도 急行으로 ~ Emergency로 하나님꼐 해달라는 것이다

獻金 宣布를 하고나서

獻金 反還을 要求하는 일은 稀罕한 일이며

萬古에 듣도 보도 못한 일이나   

獻金이 負擔이 되어 몸부림 치며 焦燥하여 ~

기쁨은 고사하고 새벽부터 只今까지 얼마나 가슴을 치고

煩憫하고 痛嘆을 했을까 ? 

輕率함과 말의 失手로 인하여 치르는 그 苦痛을 생각하며 

J 領袖를 爲한 空前 絶後한  ? 

~**나의  牧會 生活 最初의 獻金 反還 祈禱를 드렸다~**

그리고 덧붙처 J 領袖의 罪 赦함을 懇求하는 기도까지 드렸으니

하나님꼐서도 擔任 牧師의 이런 荒唐한 기도에 얼마나 놀라고

當惑해 하셨을까 ?

 

 

 

                     <4>篇  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