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현 >>의 아침마당

鄭國鉉의 우리 동네 風景 열 둘

chung si yoo 4932 2018. 6. 4. 13:20



鄭國鉉의 우리 동네

風景 열 둘

-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9:6-

장사의 神 8

호호캄 시대 할아버지시대로 부터 변함없이 새 날을 희망을 알려주는 사막의 동편 바보키바리산의 해가 머리를 조금씩 내밀기 시작하자 천지는 바보키바리산의 황금빛을 받아 반짝이기 시작했다.

토호노 부족위원회 위원인 헤수스 마뉴엘 마티네즈는 이른 아침부터 몸단장을 하고 높은 춤과 넓은 챙으로 된 독수리 깃털이 달린 멕시코 카우보이모자를 옷장에서 꺼냈다.
그리고 모자의 먼지를 털어 내고는 목에다는 부족을 상징하는 청금석과 마노로 엮은 목걸이를 두르고 이토이 문양의 은팔찌를 오른손에 찼다.
모자를 만지작거리던 부족위원회 위원인 헤수스는 모자에 달린 빛바랜 독수리 깃털을 쓰다듬으면서 깊은 상념에 젖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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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수스는 부족원들과 함께 옥수수가 알알이 영근 나지막한 토담집들 사이를 빠져나와 모래사막을 가로질러 끝없는 초원으로 말을 달리고 있었다.

자신의 구령에 맞추어 이들은 둥글게 원을 거리며 축제 때 쓸 멧돼지처럼 생긴 페커리(javelina)를 발견하고는 사냥을 할 채비를 차렸다.

‘옳지....조금만 더.... 조금만......’

모두 하나가되어 빙빙 돌면서 군무를 추며 활과 창을 겨누었다.

머리에 쓴 자랑스러운 자신의 독수리 깃털 장식이 유난히도 아름다웠다.

‘이 큰 깃털은 내가 최초로 성인이 될 때 앞으로 부족을 위해 전사로서 명예를 지키라고 아버지가 달아준 최초의 독수리 깃털이고...
나머지 깃털들은 오랜 세월, 내가 명상과 금식을 통해 수집해 머리띠에 부착한 것이지.’
이렇게 중얼거리며

‘고통과 충성 강력한 힘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메신저인 독수리-
그 깃털로 전쟁에서 용맹과 명예를 상징하는 머리띠로 만들어 머리에 쓰면 강력한 힘을 하나님께 부여 받게 되지.
암...’

모자의 독수리 깃털을 만지작거리던 헤수스의 입가에는 용맹한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는 듯 엷은 미소가 스쳐갔다.
“여보! 회의 시간 늦겠어요. 빨리 오셔서 아침식사 하세요. 헤수스 ...헤수스는 어디 있어요. 빨리 와서 같이 아침 들어요.”

뚱뚱보 안주인 마리아는 부엌에서 하얀색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두사람의 헤수스를 불렀다.

마리아의 허스키한 큰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부족위원회 위원인 헤수스는 눈앞에서 갑자기 화려하게 독수리 깃털로 머리장식을 한 아름다운 모자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것을 느끼면서 양 손에 독수리 깃털 두 개가 달랑 달린 멕시코 카우보이모자만 들려있는 자신을 보고는 조금 무안한 듯 크게 한번 기침을 하고 식탁으로 걸어왔다.

바로 그때,
불법이민자 헤수스는 마리아가 지난주일 60마일 떨어진 거룩한 마음의 교회에 예배하러갔다가 시장에서 사온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다말고는 마리아의 목소리에 놀라 방문 틈 사이로 빠꼼히 내다보고는 씨-익하고 마리아를 보고 웃었다.

식탁이 보이는 하얀 벽에는 나무십자가가 그 옆 파란 작은 창문에는 말굽과 금속도구로 장식된 작은 장신구들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식탁과 바로 붙은 작은 부엌에는 마리아가 아침을 준비하느라 동분서주東奔西走했다.

토티아, 콩, 치카론Chicharron(Chicharron:은 멕시코 사람들이 즐겨먹는 간식 같은 것인데 돼지껍질을 바삭하게 튀겨낸 것 이다.) 과 멕시코 쇠고기 구이와 선인장 볶음,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쇠고기 스프(Carne Sopa)가 커다란 보울에 가득 담겨 있었다.
오늘 아침은 불법이민자 헤수스를 위한 진수성찬珍羞盛饌이었다.
그동안 무뚝뚝하기만 하던 안주인 뚱뚱보 마리아의 진심어린 특별한 배려가 담긴 아침상이었다.

불법이민자 헤수스는 한 숟가락 쇠고기 수프를 떠다말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가진 것이라고는 방울 두 개 달랑 달고 국경을 넘은 다 죽어 가는 자신을 두 부부가 지극 정성으로 간호해 살려내고 친동기간 이상으로 배려해주는 헤수스 부부를 평생 잊을 수 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밥 먹다가 말고는 사내자식이 눈물은.... 인디언 용사들은 눈물을 아껴야해. 뚝-.”

부족위원회 위원인 헤수스가 ‘눈물’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눈가가 촉촉해지며 살짝 눈물방울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불법이민자 헤수스는 읽을 수가 있었다.

부족위원회 위원인 헤수스는
“우리 인디언들에게는 눈물로 범벅이 된 많은 아픔들이 있어.
어느 종족이던 이런 아픔은 모두 가지고 있을 것이야.
그러나 우리는 눈물을 안으로 갈무리 할뿐 울지는 않아.
사막의 모래땅같이 울 눈물도 이제는 말랐기 때문이지.”
라면서 한 예로 체로키인디언들의 눈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와는 조금은 다른 부족인 또 다른 이 땅의 주인인 용맹스러운 친구 체로키 인디언들은 지금으로부터 170여 년 전.
지금의 미국 동부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앨러
배마 주 일대에 살고 있었지.

어느 날, 이들은 백인 이주민국가 '미합중국'의 강제 이주령에 의해 고향에서 5천리(2000km)떨어진 머나먼 오클라호마 주 허허벌판으로 쫓겨났어.

미국 기병대에 쫓겨 피눈물을 흘리며 떠난 사연을 미국사 에서 '눈물의 길' 또는 '눈물의 행로'(the Trail ofTears)라고 말해. 정확히 말하면 '눈물과 죽음의 길' 인 것이야.

종종 우리들이 보는 눈물의 길이라는 그림들을 보면 마치 이들이 따뜻한 담요와 말, 마차를 갖고 떠난 것처럼 백인 화가들은 그렸어.
그러나 실상은 몸에 걸친 옷 정도밖에는 거의 갖고 갈 수 없었지.
그야말로 맨몸으로 쫓겨난 것이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의 대부분 걸어서 이동해야했고, 추운 한겨울에도 맨바닥에 누워 잠을 청해야 했지. 결국 추위와 굶주림, 질병으로, 약 4,000명이 도중에 숨지고 말았어.
이 피눈물과 죽음의 강제이주는 1839년 봄에나 끝이 났었지....

체로키인디언들은 미국 원주민 부족 중 가장 큰 집단으로 북미 인디언들 중 유일하게 스스로의 문자를 갖고 있으며 일찌기 백인문화인 기독교도 받아들였지.

그들의 독특한 정서 - 즉 감사를 기대하지 않고 사랑을 준다
든지, 또 필요한 것 외에는 대지에서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체로키족의 생활철학과 자연의 변화를 감지해서 씨 뿌리
는 때를 아는 지혜 같은 체로키족의 전통적인 가르침, 타인을
배려하는 삶. 그래서 그들은 일찍이 사랑을 실천하는 기독교도
받아 들였어.

그러나 체로키인디언은 강제이주로 말미암아 고향에서 5천리 너머 중부지방(오클라호마)으로 쫓겨나고 말았어.
이 때 이동하며 이들이 부른 노래가 우리가 다 아는 눈물의 어메이징 그레이스였지.

이 전통적인 기독교 찬송가는 훨씬 이전에 선교사들의 도움
으로 이미 체로키어로 번역되어 있었어.

죽은 동료, 아이들을 땅에 묻으며 이 음악의 영감을 빌려
그들의 명복을 빌었고 살아남은 이들의 힘을 북돋우기 위해
이 노래를 눈물로 불렀어.

이 노래를 체로키어로 번역해 이들에게 전해 준 인물은,
이들과 함께 살면서 강제이주에 끝까지 반대해 법정투쟁까지
하며 이들을 도운 백인 선교사 새뮤얼 워시스터(Samuel
Austin Worcester)(1798~1859)였지.

오늘날 체로키 인디언들은 이 노래를 거의 애국가처럼 부르고 있어.”
..........

그때 체로키 인디언들처럼 지금 우리도 상황은 너무나 비슷하지.

멕시코와 미국은 전쟁을 한 직후에 우리들은 염두에도 두지 않고우리 조상의 땅 바로 북쪽인 기라 강에서 선을 그어 국경을 만들어 버렸어.
우리는 우리 땅에서 가만히 앉아 이곳도 저곳도 속하지 못한 2등 국민으로 전락하고 만 거야.

나는 지금도 이 땅이 우리 토호노 오담의 조상들이 영원히 머무는 고향이고 우리들이 대대손손 살아가야하고 지켜야할 땅임을 믿어.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이 땅에 우리의 존재를 상기시키고 멕시코 측 오담과 미국 측 오담을 영원히 묶는 일연의 작업들을 우리 부족 위원회 위원들과 함께 하고 있지.

멕시코와 미국 토호노 오담의 뿌리는 이대로 두면 끊어지고 말거야.

왜 우리가 우리의 땅에서 그것도 남들에 의해서 서로 나누어지고 호호캄 할아버지때 부터 내려오는 말과 전통문화까지 모두 잊어 버려야하는 거지?
정말 절박한 거야.

채로키 인디언들이 애국가처럼 부르는 눈물의 어메이징 그레이스처럼 우리에게도 이미 운명을 달리한 장로들이 가르쳐준 노래이가 있어.
우리들의 영혼을 맑게 할 청결의 춤인 다히완(dahiwan)을 함께추면서 그 노래를 부르고 하지.

우리들의 노래는 바로 우리들의 기도야.
하나님께 하나 되게 해달라고 눈물로 올려 드리는 기도이지.

사막의 사람- 우리 토호노 오담 용사들은
바로 그때만 울기로 했어.
그때만......”

“이야기는 돌아와서 하고 식기 전에 어서 들어요.
이러다간 회의가 끝나겠어요.
당신 때문에 헤수스가 아침도 못 먹잖아요.”

그래도
부족위원회 위원인 헤수스는 멈추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자 마리아는 급기야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폭발 하고 말았다.

애비나 자식이나....쯧쯧쯔...
돈도 못 벌어 오는 주제에 입만 살아서.....

하고 혀를 차면서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혼자 애국자인 것처럼 행동한다며 핏대를 올렸다.

부족위원회 위원인 헤수스는 안절부절 하는 불법이민자 헤수스를 바라보고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씨-익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고 빨리 먹자고 제스처를 취했다.

해가 바보키바리산 어깨 위로 올라와 사막의 대지를 달구기 시작할 무렵에 부족위원회 위원인 헤수스는 불법이민자 헤수스를 구형 검은색 지엠씨 시에라(GMC Sierra)에 태워 사막에 난 비포장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불법이민자 헤수스는 앞뒤 구별이 없을 정도로 먼지가 뽀얗게 이는 구릉을 덜컹거리며 트럭이 달리기를 시작하자 때마침 부는 사막 바람에 천지를 분간할 수 없는 모래 바람 속에 불안감과 두려움에 떨었다.

이렇게 족히 두 시간은 왔으리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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