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현 >>의 아침마당

12 월 14 일 (목요일 )<鄭國鉉>의 아침 斷想

chung si yoo 4932 2018. 1. 10. 21:14

이미지: 사람 1명, 정장, 밤, 실내

12 월 14 일

(목요일) 정국현의 아침斷想

정국현 歷史小說

불국토佛國土에 핀 예수

1. 구도자求道者의 길

⑳ 황무지에 뜬 새벽별 하나

“이리... 앉으시게!”
도녕존장이 상석上席을 권했다.
“아니옵니다... 여기 이렇게 서 있는 것이 편하옵니다. 하문下問하여 주시옵소서.”
대성은 도녕존장에게 깍듯이 공수拱手의 예를 올렸다.

공수拱手란 배꼽 밑에 두 손을 모으는 자세로 한국인에게만 있는 공손한 자세이다. 공수의 사전적 의미는 ‘어른에게 공손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두 손을 잡음’이며 기본 동작은 두 손의 손가락을 가지런히 편 다음 앞으로 모아 포개는 것이다.
공수법에서 남자는 왼손이 위로가게 잡고 여자는 오른손이 위로가게 잡는다. 하지만 상가 방문 등 흉사 시에는 반대로 남자는 오른손이, 여자는 왼손이 위로 올라가게 잡아야 한다.
그리고 앉을 때에는 남자는 두 손을 중앙에 놓고 여자는 오른쪽 다리위에 놓는다.
작은 예법 하나에도 소홀함이 없는 대성을 흐뭇하게 바라보든 점개가 대성을 보며
“ 이리로 앉게 나. ... 그리해야 서로 편한 것이야.”

점개는 대성에게 앉기를 권한 후 대성에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 자네도 작금의 현실을 눈으로 보아 알겠지만 익선의 무절제한 행동 하나로 모량부가 모두 연좌제로 묶여 모량부는 정치활동의 기반을 일시에 잃고 말았다네. 이는 왕비족이 그동안 왕실의 무관심으로 인해 왕비를 전혀 배출하지 못하고 그 정치 기반이 약해지자 모량부인들의 불만이 점점 커짐을 간파한 왕실과 진골들이 익선의 작은 죄를 침소봉대針小棒大(적은 일을 크게 과장하여 말함)하여 모량부 전체를 단 한 번에 길들이기 하는 것이라 볼 수가 있다네.”

“ 이 사건의 실상은 누대에 걸쳐 내려온 해묵은 감정들이 반근착절盤根錯節(얽히고설켜 처리하기 곤란한 사건)됨이야.
해서, 내- 대성에게 이 중차대重且大한 사건을 맡기고자 함은 ‘우후의 고사’가 생각났기 때문이야!”

‘우후의 고사’란 후한서 우후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후한의 6대 황제 안제安帝가 13세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모후母后가 수렴청정을 하고 그 오빠 등즐은 대장군에 올라 병권을 장악했다. 이 무렵 유목민인 강족羌族이 서북변방을 침범하고 흉노까지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노렸으며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국내적으로 가뭄이 들어 등즐은 재정이 없다면서 병주만 방어하고 양주를 포기하려했다.
그러자 낭중벼슬을 하던 우후가 양주는 많은 걸출한 인재와 무사를 배출한 지역이고 또한 이 지역을 포기하면 많은 유랑민流浪民들이 발생해 내지인들과 마찰을 일으킨다며 반대했다. 이에 등즐은 우후를 눈엣가시처럼 여겨 제거할 기회를 노리다 조가현에서 폭도들이 현령을 살해하는 반란이 나자 등줄은 우후를 조가현 현령으로 임명했다.
그러자 우후의 일가친척들은 죽으러 가는 우후를 보고 일시에 모두 조문을 했다.
그러자 우후는‘ 안일한 뜻을 구하지 않고 험한 일을 피하지 않는 것이 신하의 도리가 아닌가. 서린 뿌리와 뒤틀린 마디를 피한다면 이 어디서 예리한 칼날을 휘두를 수 있겠는가?’
지불구역 사불피난 임지직야 불우반근착절 하이별이기호
志不求易 事不避難 臨之職也 不遇盤根錯節 何以別利器乎
반문하며 부임을 하고 지략으로 이 난을 평정했다.

대성은 점개로 부터 우후의 고사를 듣자마자 오늘의 현실을 우후의 고사에 대비 해 보았다.

이홍 거매금(효소왕)의 올해 춘추 일곱... 모후 신목왕후의 수렴청정...그리고 일부 진골 김씨 왕족들과 귀족들이 호시탐탐 왕권을 노리며 역모를 꾀하고자 하는 움직임 ..... 그리고 왕경 서북쪽에 있는 모량부의 존재 등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쳐지나갔다.

대성은 곧바로 점개 선사가 어린 자신에게 모량부의 사활이 걸린 이 중차대重且大한 일을 부탁하는 의미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진골이지만 늦게 신분이 회복되어 화랑도 되지못하고 공적인 진골로서 정치활동이 전무한 대성을 이번 일을 통해 진골로서 왕경에서 입지를 구축하고 정치에 입문하기를 바라는 배려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 모량부 일은 익히 듣고 보아 알고 있으리라 사료되오. 내일이면 본가로 돌아가는데......이찬 어른께 잘 말씀드려 모량부 입장을 대변해주면 좋겠소. 해서... 여기 계시는 점개 선사님과 존장 어른과 복안장자 우리 모두의 의견을 취합하여 지금, 모량부 입장을 전해 드리는 것이오.”
종오장자가 말을 건넸다.

대성은 말이 없이 앉아만 있는 복안장자를 올려다보았다.

대성은 어머니 경조와 피붙이 시절부터 정을 붙이고 살아온 고향, 자신을 친자식처럼 사랑해준 복안장자와 다정다감한 순박한 이웃들의 얼굴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순간 ‘울컥’ 하고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견의불위무용야見義不爲無勇也 (마땅히 해야 할 일인 줄 알면서도 실행하지 않으면 참된 용기가 아니다)라 했사옵니다.”

“하겠사옵니다. 모량부 일을 건의하겠사옵니다. 저는 영원한 모량부인이옵니다. ...심려 놓으소서.”

대성은 자신의 온몸에 돌고 있는 이 뜨거운 피가 모량부인의 피임을 새삼 확인했다. (계속)

산중만흥

소요태능(1562-1649)

자맥홍진척허심
기다유환객부침
수지일편백운학
천부빈승치만금

山中漫興


紫陌紅塵尺許沈
幾多遊宦客浮沈
誰知一片白雲壑
天付貧僧値萬金

도시의 거리 붉은 먼지가 한자나 쌓였는데
얼마나 많은



벼슬아치들이 부침하는가
누가 알까, 한 조각 흰 구름과 골짜기
하늘이 가난한 중에게 준 것이 만금 같아라

*浮沈부침: 물위에 떠올랐다 물속에 잠겼다함.
세력이 성하고 솨함을 비유적으로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