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siyoo chung
지금으로 부터 까마득한 80 년 전으로
연수(年數)가 뒤돌아갑니다
그러니까 ^^ 1939 년 알제 치하
생각이 나는 것은 ~
평양 서성 국민 학교(平壤 西城 國民 學校)
2학년 때의 이야기입니다
어린 나이인데도 별나게도 ~심술 굳고
놀기를 좋아하고
작난(作亂)이 심하여 ^^ 악희<惡戱>의 reportory는 연연 <連延>히
길고 다양하게 뻗어만 갔습니다
그런데 장난의 와중(渦中)에
이상한 수집벽이 생겨났습니다
<다갈>이였습니다 ~
<당시 국민학교 학생들 사이에 유행한 말입니다>
구두 밑창에 박는 <징>을 일컫는 말입니다
<다갈>은
말굽모양<馬蹄形>으로 된 것도 있고
반달모양 <半月形>혹은 세모로 된 것들이 있었습니다
<말굽>에 박는 편자<horseshoe>를
소형화한 것으로
구두 밑바닥 창이나
굽에 박아 신고 다녔습니다
옛날의 최고급 구두는
코오드반 <cordovan>구두였습니다
스패인의 <코르도바>에서 나오는 질이 고운
산양의 가죽으로 만든 고가의 구두입니다
당시 신사들은 코오드반 구두를 신었습니다
밑창과 굽에는 <다갈>을 박는 것이
유행이였습니다
길을 걸을 때 마다 구두 안창에서
나오는 ~ㅉ~익~ㅉ~으~익하는
간지러운 <마찰음>과
따을까닥~따을까닥~하는
답보하는 <다갈>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아버지는 대인친화형이신 분이였습니다
아버지의 서재는
지역사회의 사랑방이였습니다
떼거리를 <송구합니다>지워
손님들이 찾아와 문전성시 !!!를 이루었습니다
박장대소하는 소리가 한참 동안 문밖으로
들려 나옵니다
아버지의 예의 우스갯소리가 시작된 것입니다
나는 손님들의 칭찬소리가 듣기 좋와
섬돌위에 벗어 둔 구두를 2켜레 3켤레...씩
구두코를 나란히하여 가즈른히 놓았습니다
구두창과 굽에는 한결같이 <다갈>이 박혀 있엇습니다
뻔쩍 뻔쩍 광택이 나는 코오드반 구두가
보기도 좋왔지만 심술이 났습니다
거드름을 피우는 어른들의 코를 한번 납작하게 눌러
골탕을 먹여 보고싶은 충동에 장난끼가 발동한 것입니다
구두마다 <다갈>을 뽑기로 한 것입니다
구두방에서 사용하는 조그만한 집게와,드라이버로
한켜레식 구두를 들고는 뒷마루 모통이에 숨어
<다갈>을 쑥 쑥 뽑는 것입니다
손님들이 담소하며 웃음곷을 피울 때
단 1분이면 작업이 깨끗하게 끝나는 것이였습니다
<다갈>을 뽑을 때 느끼는 그 아슬 아슬한 thrill~~~
두군 두군 솟구치는 전율 ~<소변 보고난 후의
떨림과는 질이 좀 다름니다 ㅎㅎㅎㅎㅎ>
그리고, <다갈>이 빠진 구두를 신고 의연히 돌아가는
손님들의 거들대는 모습이 얼마나 우습든지~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고소<苦笑>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다갈>뽑는 재미의 삼매경에 빠진채
event를 계속하다 보니 진퇴를 구별하지 못하고
꼬리가 길었든 것이였습니다
"목사님 댁에 가면 <다갈>이 빠진다? ? ?"
입소문은 바람을 타고 아버지께 전달이 되였습니다
화가 나신 아버지는
동네 아이들과 구슬치기에 정신이 없든 나를
단번에 지명수배하고
아버지의 서재에 불려 갔습니다
<다갈>을 뽑을 때 사용한 연장은 압수를 당하고
전리품 ?은 물론 전량 압수되였습니다
분필통에 2 box였습니다
짓궂은 장난의 대가는 초달(楚撻)이였습니다
어머니의 간절한 비호로 다행히 횟초리 3대가
감형되였습니다
다음날 새벽 경건의 시간을 마치신
아버지가 구두 ",다갈>보다 책을 수집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용돈을 가지고 서점에 갔습니다
일어(日語) <세계 위인 언행록>을 샀습니다
참 재미있었습니다
수집품이 구두 <다갈>에서 <책>으로 바뀌였습니다
어느듯,
마음에 서가에도 책들이 꽂히고
아름다운 책속의 보화가 차곡 차곡 쌓이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