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 정치의 황금기를
요순[堯舜]의 정치[政治]라고 한다면 쇠망기[衰亡期]의 상징은 걸주[桀誅]의 폭정[暴政]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은[殷]의 주왕(紂王)이 국정을 돌보지 않고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방탕[放蕩]할 때 신하들 중에 주[紂]왕의 비행을 간[諫]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공자[孔子]는 충간[忠諫]을 한 세 사람을 은[殷]에 삼인[三仁]이 있다고 했습니다 삼인(三仁)은 미자(微子), 기자(箕子), 비간(比干) 세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 였습니다
미자[微子]는 주왕의 숙부 뻘로 여러 차례 왕의 그릇됨을 지적하여 간하였으나 듣지 않았으므로 국외로 망명해 버렸고
기자[箕子]도 역시 간언의 효과가 없자 역시 국외로 망명하여 주왕의 수치를 드러낼까 두려워 거짓으로 미치광이 노릇도 하고 노예 노릇도 하였습니다
비간[比干]은 왕자로서 극간[極諫]하다가 육시 처참을 당했습니다 . 후에 주[周]나라가 서고 기자[箕子]는 조선 왕으로 책봉되었습니다 . 어느 해 기자[箕子]는 고국에 돌아와 은의 옛 도읍지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화려하던 도읍지는 폐허가 되었고, 궁궐터에는 보리나 기장이 무성하기만 했습니다 그는 서글픈 감회를 못이겨 시 한 수를 읊었습니다 보리 이삭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벼와 기장들도 잎이 기름지도다
교활한 저 사람이여 (주왕을 의미) 나의 말을 듣지 않음이 설프구나.
麥秀漸店兮
禾黍油有兮
彼狡童兮
不與我好兮
여기에서 망국지탄[亡國之嘆]을
맥수지탄[麥秀之嘆]이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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