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정 희섭 목사 옥중 수기
<#7에서 계속>
10. 저술과 기도
-이제 후로 나를 위해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
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8
나는 옥중에서 주님 송덕가, 부모 은덕가, 사처가 및 한시
수 편을 저술 하였고 로마서와 요한복음에 대한 연구 논문의
원고를 몇 편 기술하였다
그리고 주야로 기도에 힘쓰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특별히
마음에 느끼는 바가 있어서 주님 가르치신 기도문을 7,000회
를 송독했다
7,000회를 송독한 그 날에 감옥에서 석방되었다
11. 교회 해산과 피신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
다우니라- 벧전 2:20
그 해 10 월 말 경 경찰 서장의 직권으로 교회는 완전히 해산
되었다
그러나 실제 교회 해산은 1943년 5월 24일이다
왜냐하면 그 날 이후에는 예배와 모든 집회가 교회에서
금지되었기 때문이었다
말목으로 예배당 문을 막고 창문마다 못을 박아 출입을 금
한 예배당은 폐허를 방불케 했다
삼천포 교회를 떠나는 전날 밤에 삼삼오오 신자들이 사택
으로 모였다
신자들 사이사이에는 낯 익은 고등계 형사들도 보였다
신자들은 그들을 무시한 채 찬송가를 부르고 협력해서 기도
하기 시작했다
투옥도 마다하고 목사인 나를 위해 열어 주는 삼천포 교회
신도들의 이 마지막 예배를 악독한 일경들도 눈감아 주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폐쇄된 예배당을 뒤돌아 보며 단장의
아픈 가슴을 안고 흩어진 주님의 사랑하시는 양들의 이름을
하나 둘 불러보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긍휼하신
은혜가 함께 하기를 기도하면서 청도로 발길을 옮겼다
(당시 성결교회는 모두 해산이 되었지만 장로교회에서는
목회를 할 수 있었다)
저간 옥고를 치르는 동안 장 경한, 서 명길 두 분의 장로가
목사 가족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직원들과 함께 많은 고생
을 하였다
그 분들의 헌신적인 희생-참으로 잊지 못할 은혜인 줄 알고
감사하는 바이다
( 삼천포교회 신도들의 사랑에 빚을 진 나는 해방 후 1954년
삼천포 교회에서 재임 시무를 했으니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
에 감사 할 뿐이다.)
--고 망제 정 희섭 목사의 연보는 망제집을 참조--
--성결교회지에 실린 원고에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