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禧燮 牧師

鄭禧燮牧師의 三千浦聖潔敎會<8>

chung si yoo 4932 2013. 6. 22. 14:41

블로그 카테고리 : 鄭禧燮목사님[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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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 노릇 못해도 예수는 안 믿을 수 없다--#8 (0점) | 鄭禧燮목사님[회상] 2006-02-23
오후 1:38:59

고 정 희섭 목사 옥중 수기

                                           <#7에서 계속>

 

10. 저술과 기도

 

-이제 후로 나를 위해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

 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8

 

나는 옥중에서 주님 송덕가,  부모 은덕가,  사처가 및 한시

수 편을 저술 하였고 로마서와 요한복음에 대한 연구 논문의

원고를 몇 편 기술하였다

 

그리고 주야로 기도에 힘쓰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특별히

마음에 느끼는 바가 있어서 주님 가르치신 기도문을 7,000회

를 송독했다

7,000회를 송독한 그 날에 감옥에서 석방되었다

 

 

11. 교회 해산과 피신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

다우니라- 벧전 2:20

 

그 해 10 월 말 경 경찰 서장의 직권으로 교회는 완전히 해산

되었다

그러나 실제 교회 해산은 1943년  5월 24일이다

왜냐하면 그 날 이후에는 예배와 모든 집회가 교회에서

금지되었기  때문이었다

 

말목으로 예배당 문을 막고 창문마다 못을 박아 출입을 금

한 예배당은 폐허를 방불케 했다

 

삼천포 교회를 떠나는 전날 밤에 삼삼오오 신자들이 사택

으로 모였다

신자들 사이사이에는 낯 익은 고등계 형사들도 보였다

 

신자들은 그들을 무시한 채 찬송가를 부르고 협력해서 기도

하기 시작했다

 

투옥도 마다하고 목사인 나를 위해 열어 주는 삼천포 교회

신도들의 이 마지막 예배를 악독한 일경들도 눈감아 주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폐쇄된 예배당을 뒤돌아 보며 단장의

아픈 가슴을 안고 흩어진 주님의 사랑하시는 양들의 이름을

하나 둘 불러보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긍휼하신

은혜가 함께 하기를 기도하면서 청도로 발길을 옮겼다

(당시 성결교회는 모두 해산이 되었지만 장로교회에서는

목회를 할 수 있었다)

 

저간 옥고를 치르는 동안 장 경한, 서 명길 두 분의 장로가

목사 가족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직원들과 함께 많은 고생

을 하였다

그 분들의 헌신적인 희생-참으로 잊지 못할 은혜인 줄 알고

감사하는 바이다

( 삼천포교회 신도들의 사랑에 빚을 진 나는 해방 후 1954년

삼천포 교회에서 재임 시무를 했으니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

에 감사 할 뿐이다.)

 

--고 망제 정 희섭 목사의 연보는 망제집을 참조--

                          --성결교회지에 실린 원고에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