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落書(51)~豊饒로운 大明 天地에, 미국 같이 먹거리가 많은 나라에서 배고팠던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어제 밤에 稀罕한 꿈을 꾸었다 南海에서 뛰어놀던 싱싱한 元氣 旺盛한 깨장어 회를 廚房에서 한 접씨 해 놓고 ~빨간 초장에 찍어 한입 먹는데 수 차례나 試行錯誤를 했다. 그러니 ~젓가락에 찝은 회가 먹기도 전에 ~입에서 살~ 빠지고 살~ 빠지는데 ~화가나 탁자를 꽝 ! 치고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생선회는 내가 좋아하는 嗜好食品이라 먹지 못한 것이 아쉬었다
나는 90 평생을 살며서 移徙를 많이 다녔다.
이사 할 때마다 ~부엌<廚房>과 음식에 대한 episode가 꽤 많다
2 차 대전의 渦中 三千浦에서 아버지가 신사참배 거부로 일본 警察의 미움을 받아 교회 건물은 閉鎖되고 아버지는 拘禁 囹圄의 몸이 되고 교회 신도들은 뿔 뿔이 흩어졌다 더욱이 長老 두 분과 전도부인까지 收監 된 터라 교회에서 목사 생활비를 줄 수가 없었다 나는 不逞鮮人의 아들이란 딱지가 붙어 轉入學이 허가 되지 않아 平壤에서 移徙 온 후 白手乾達로 놀다 간신히 往復 30 리 길 ~固城 下二 國民學校에 轉入이 되었다 日帝時代 에는 食糧事情이 어려웠다 문제는 도시락이다 어머니는 병중에 起居動作이 불편하여 누워만 계시다 아침이면 일어나 꼭 도시락을 싸 주셨다 어머니는 勘當 할 수 없는 시련과 衝激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눈물의 기도로 성경을 적셨다 어느날 下校 후 인기척이 없어 부엌에 들어가 보니 ~쌀도 반찬도 먹거리는 하나도 없었다 어린 마음에 虛脫한 심정을 가눌 수가 없었다 患難과 困窮의 어려운 狀況 중에 依支하고 기댈 곳은 萬有의 주 여호와 하나님 뿐이다~ 五餠二魚의 기적(마태 14:13~21)을 행하시고 사르밧 寡婦의 통에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아니하게 축복하신 (열왕기상17:8~29)하나님의 능력과 공중의 새도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고 (마 6:25~34)인류를 기르시는 은헤를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날이 밝은 후 새벽에 무심코 부엌에 들어 갔더니 쌀통에는 쌀이 넘치도록 차 있고 餐꺼리로 싱싱한 도다리와 乾魚物과 미역과 새우 등 약념들이 廚房 가득히 잘 陳列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기적은 아무도 모르게 아버지가 病 保釋으로 出獄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 ~나는 매일 빠지지 않고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다녔고 ~
교회를 떠나 강산이 8 번이나 변한 지금 까지도 어느 성도가 행한 사랑인지 알길이 없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한 작은 예수님이다 그리고 우리가정을 지키고 도와 준 은인이다
일본 도쿄<東京>의 교회 사택은 살기에 快適하게 지은 미국선교사용 2층 주택으로 건물에 주방은 최신식으로 만들어 1930년 후반에 음식 조리와 炊事에 gas불을 사용했다 일본은 그 당시 한국보다 문명시설이 50 년 이상이 앞섰다 방마다 새로 깐 다다미 たたみ[畳, 疊]일본어8장 /6장/4/장 방들이 많아 한국에서 친척들이 유학도 오고 취업도 하기 위해 몆 사람이나 寄食을 했다 gas불도 잘 사용하지 못하고 일본말도 익숙지 않는 누나들을 나는 업신여기고 괴롭히고 氣高萬丈하게 貶下 無視했다 밥을 질게하면 먹지를 않았다 누나들은 방직공장에 작공으로 일했다 아버지가 동경,<東京>교회를 사임을 하고 平壤敎會로 赴任할 때 누나들을 두고 동경역에서 아까츠기<曉>急行 汽車를 타고 그곳을 떠날 때~驛頭에서 조그마한 선물을 내손에 쥐어주고 그렇게 슬피 울던 누나들의 얼굴 모습이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쓰라리고 미안하고 아프다 .
평양의 사택 주방은 2층에 부엌이 있고 炊事는 솔가지와 長斫으로했다 불을 집히면 煤煙으로 눈이 따가와 눈을 못떨 정도라 어머니의 수고가 말이 아니게 極甚했다 ~웃기는 일은 그 부엌 덕에 나는 학교에서 善行 表彰狀을 받았다 어머니가 저녁밥을 지을 때 눈이 따가와 동생을 업고서는 아무 일도 하 수 없기에 내가 동생을 업고 돌본 것인데 그 시간대가 꼭 ~담임 선생이 퇴근하는 시간이라 동생을 업고 신작로 步道에 나가면 좋든 싫든 담임인 하뉴다토시꼬,<羽生田淑子> 선생을 만났다 선생님은 어머니를 돕는 착한 학생으로 학교에 稟申하여 賞 을 받은 것이다 ~ 점심 시간에는 사택 앞 (상호는 잊어버림) 2 층 冷麵집에서 평양냉명을 배달시켜 먹은는데 나는 溫麵을 자주 얻어 먹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음식은 홍권사가 자주 당마당(市場)에 가서 사온 녹두 찌짐과 순대다 .
~廚房도 가지 가지다 1944년경 청도 풍각 교회 사택 주방은 문명에 낙후한 太古然한 주방이다 진흙으로 발라 만든 부엌이라 금이 간 龜裂된 부뚜막 사이로 개미가 장사진을 친다 밥이나 반찬이나 음식물에는 점 점이 개미가 새카맣게 기어 다닌다 그런데 그 당시 교회와 신자들의 거주지가 멀어 사방 20리가 넘는 분도 있기에 주일 예배에 올 때는 도시락을 싸온댜 鍮器 놋거릇에 꽁당 보리밥을 눌러 담고 생된장과 상추나 풋고추를 보자기에 싸서 반찬으로 가지고 와서는 삼삼오오 둘러 앉아 가정마다 나누어 먹는다 사택 부엌에서 바가지에 물도 퍼오고 김치도 내어 오지만 不潔이나 汚染이나 ~위생에 대한 관념은 눈을 딲아도 볼 수가 없었으니 참으로 초대 교회 모습 그대로다 平安하고 質朴하며 서로 나누며 儉素하고 서로 섬기며 謙遜하고 慰勞하고 團欒하고 즐겁고 和氣靄靄한 모습은 작은 천국의 모형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