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吳)나라 왕 수몽(壽夢)의 아들인 계찰(季札)의 일화이다. 계찰은 처음 사신으로 떠났을 때 오나라의 북쪽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서(徐)나라의 군주를 알현하게 되었다. 서나라의 군주는 계찰의 보검(寶劍)이 마음에 들었으나 감히 입 밖으로 드러낼 수 없었다.
계찰은 속으로 그의 뜻을 알아차렸지만 사신의 자격으로 중원(中原)의 각 나라를 돌아다녀야 하였기 때문에 노정이 험한 관계로 검을 그에게 주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서나라에 도착해보니 서나라의 군주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이에 계찰은 자신의 보검을 풀어 무덤가의 나무에 걸어놓고 떠났다. 수행원이 그 이유를 묻자 계찰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처음에 내가 마음속으로 이미 보검을 주겠노라고 허락하였거늘, 어찌 그가 죽었다고 하여 내 마음을 배반할 수 있겠는가.(始吾心已許之, 豈以死倍吾心哉)"
여기서 마음으로 허락한다는 의미의 ‘心許(심허)'라는 말이 유래됐다. 심허는 신의를 중히 여겨 말로 약속하지 않았더라도 마음속으로 허락한 일은 꼭 지키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그래서 季札掛劍(계찰괘검, 계찰이 검을 걸어놓다)은 신의(信義)를 중히 여김을 비유한 말이다.
노나라의 애공에게 맹무백이라는 대신이 있었는데 식언(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일삼았다. 어느 날 연회에서 맹무백이 몸이 비대한 신하를 놀렸다. “무엇을 먹고 그렇게 살이 쪘소?” 그러자 애공이 대신 대답했다. “말을 하도 많이 먹었으니 살이 안 찔 리 있겠소?” 식언이 잦은 맹무백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애공이 이를 비꼰 것이다. <춘추좌씨전>에 나오는 고사다.
季札掛劍: |
(1)、春秋時,吳公子季札出使晉國,途中經過徐國,拜謁徐國國君時,徐國國君喜愛季札所配戴的寶劍,而不敢說。季札因出使他國需要佩帶寶劍,而無法贈與他。然回國時,再經徐國,得知徐國國君去世,季札就將劍贈於嗣君。而嗣君不受,季札就將劍掛在徐國國君墓前的樹上而去季札隨從則說:「徐君已死,又何必贈之?」季札說:「雖然徐國國君已死,但我心中已默許,怎能因為他去世而違背諾言呢?」。 (2)、《史記》.吳太伯世家:季札之初使,北過徐君。徐君好季札劍,口弗敢言。季札心知之,為使上國,未獻。還至徐,徐君已死,於是乃解其寶劍,繫之徐君樹而去。從者曰:「徐君已死,尚誰予乎?」季子曰:「不然。始吾心已許之,豈以死倍吾心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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