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想의 窓<隨筆>

<<관포지교 管鮑之交>>

chung si yoo 4932 2018. 11. 4. 16:11

관련 이미지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의 이야기 **

                    <<관포지교 管鮑之交>>

중국의 춘추시대에 살던 '관중'과 '포숙'이라는
사람은 많은 것을 함께 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두 친구의 돈독한 우정을
<<관포지교 管鮑之交>>라고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 되고 있습니다
siyoo chung

< 일찍이 관중(管仲)은 포숙(鮑叔)을 회상하면서 말하기를 > ~.
“내가 일찍이 곤궁할 때에 포숙(鮑叔)과 함께 장사를 하였는데,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더 많은 몫을 가지곤 하였으나
포숙 (鮑叔)은 나를 탐욕스럽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포숙(鮑叔)을 위해 일을 도모하다가 실패하여
더 곤궁한 지경에 다달았는데 포숙 (鮑叔)은 나를 우매하다고 하지 않았다.
시운이이롭고 이롭지 않은 것이라 했다
일찍이 나는 새 차례 벼슬길에 나갔다가 세번 임금에게 쫓겨났지만
포숙(鮑叔)은 나를 무능하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시운을 잘 만나지 못 했다고 했다.
일찍이 나는 세 차례 싸웠다가 세 차례 패해서 도망했지만,
포숙(鮑叔)은 나를 비겁하다고 하지 않았다.
나에게 늙은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라 했다
공자 규가 패하였을 때 동료이던 소홀은 죽고 나는 사로잡히어 유폐된 몸이 되었지만
포숙(鮑叔)은 나를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작은 절조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공명을 천하에 드러내지 못하는 것을 치욕으로 안다고 했다.
나를 낳은 이는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포숙은 관중을 천거한 후 자신은
늘 관중의 아랫자리에 들어가서 일을 하였다.
포숙의 자손은 대대로 제나라의 녹을 받고 봉읍을 가지기를 십여 대나 하였는데,
항상 이름 있는 대부로 세상에 알려졌다.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을 칭찬하기보다
오히려 포숙의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을 더 칭찬하였다.

管鮑之交 ;~^^
、「吾始困時、嘗与鮑叔賈。分財利多自与。
鮑叔不似我為貪。知我貧也。
吾嘗為鮑叔謀事、而更窮困。
鮑叔不似我為愚。知時有利不利也。
吾嘗三仕三見逐於君。
鮑叔不似我為不肖。知我不遭時也。
吾嘗三戦三走。鮑叔不似我為怯。知我有老母也。
公子糾敗、召忽死之、吾幽囚受辱。
鮑叔不似我為無恥。
知我不羞小節而恥巧名不顕于天下也。
生我者父母、知我者鮑子也。」
鮑叔既進管仲、似身下之。
子孫世禄於斉、有封邑者十余世、常為名大夫。
天下不多管仲之賢、而多鮑叔能知人也。
管仲既任政相斉、似区区之斉在海浜、
通貨積財、富国強兵、与俗同好悪。
故其称曰、「倉廩実而知礼節、衣食足而知栄辱。
上服度則六親固。四維不張、国乃滅亡。
下令如流水之原、令順民心。」故論卑而易行。
俗之所欲、因而予之、俗之所否、因而去之。
•共感した


'隨想의 窓<隨筆>'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anksgiving day  (0) 2018.11.24
**백아절현(伯牙絶絃)**  (0) 2018.11.06
管鮑の交わり<參考用>  (0) 2018.11.03
**冒雨剪韭**  (0) 2018.11.01
** <<食言 固辭>>**  (0) 2018.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