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09-08-27 오전 10:58:16 |
Nicolaus Copernicus [1473-1543 ]
名言의 出典과 故事
* Copernicus적 전회[轉回]*
SiYoo Chung
폴란드[Poland]토루니[Torun]에서 태어난 코페루니쿠스[Nicolaus Copernicus]는 천체의 끊임 없는 충실한 관측에 의하여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되였습니다
그것은 이 지구도 구형[球形]을 이룬 천체[天體]의 하나로서 태양의 주위를 회전[回轉]하고 있다는 지동설[地動說]이 였습니다
코페루니쿠스는 지동설의 정당성에 자신을 얻었음에도 곧 자설[自說]을 공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이것을 교회의 권위로 이단사설[異端詐說]로 규정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음의 직전 친구들의 권고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 ]라는 논문을 발표 했습니다
논문의 서두에 당시의 법왕[法王] 바우로 3 세에게 보내는 대략 다음과 같은 헌사[獻辭]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 <나는 조물주가 우리들을 위하여 창조한 우주에 대하여 종래의 학설이 불충분한 것이 마음에 걸려 고대의 문헌[文獻]을 섭렵[涉獵] 조사한 바 ... 희랍의 피다고라스[Pythagoras]파의 철학자들이 지동설을 주장하고 있었던 것을 알았습니다 이와 같이 천체 현상을 풀기 위하여서는 각양의 상상이 용인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므로 나도 이와 같이 지동설의 근거를 바탕으로 수 년간에 걸쳐 연구를 거듭 쌓은 결과 ~ 천체의 운행이 보다 이론적으로 해명되어 지는 것을 발견하게 되였습니다 ....>
이 헌사[獻辭]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비굴한 자기 변호이며 호신[護身]을 위한 완곡한 어투[語套]로 씌여져 있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코페루니쿠스는 자설[自說]을 굽힌 것이 아니 였습니다 오히려 법왕에게 완곡[婉曲]한 헌사를 드리므로 자기의 주장을 인정 받고자 한 것입니다
법왕은 헌사를 읽고 교회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으로 믿고 만족 했습니다
코페루니쿠스는 아무런 탄압도 받지 않고 평온한 가운데 자기의 생을 마감 했습니다
그러나 법왕은 이 논문이 발표된 후 조용한 가운데 빠르게 [코페루니쿠스적 전회[轉回]가 180 도 이루어진 것을 알지 못 했습니다
우주관[宇宙觀] 세게관[世界觀]의 대 변혁[變革]은 [코페루니쿠스적 혁명[革命]] 이라고 말하며 철학[哲學]등의 분야에서의 대 변혁[變革]은 [코패루니쿠스적 전회[轉回]라고 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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