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禧燮 牧師

**정희섭 목사 <<조선 나사렛교단 최초 목사 안수 >>

chung si yoo 4932 2017. 9. 26. 13:33

조선 나사렛교단 최초의 목사 안수

   1943 년 5 월 5 일

     사진 중앙 承學洙 牧師

안수 정희섭 목사 사진 우측 좌석

안수위원

정희섭 목사

천세봉<광>목사 사진 좌측 좌석

은희봉 목사

정재학 목사

조정환 목사

손형규 장로

장성옥 목사


 

 

 

 

 鄭禧燮 牧師의  ㅡ memorandum 中 一部  拔萃 

 


平陽 新陽里 나사랫<Nazarene>敎會 篇 [2]

 

戰爭 中 日本은 宗敎團體法을 制定하여 

宗敎 團體를 强壓하고 統制하기 시작 했다

政府의 强權的 要請으로

 

教団統理者富田満牧師
 

1941 년 6 월 24 일에는  日本 國內의 protestant 33 敎派를 

하나로 合同하여 <朝鮮 各 敎派도 同一함>

~[日本基督敎團]으로 統一되었다

公式 英語 名稱은 [united church of christ in Japan]

略稱은 [敎團]이다

[敎團]의 編成은 十一部制인데 nazarene 敎會 東部 西部는

第八部에 屬했다 ~<平陽 나사렛 敎會도 第八部에 屬함 >

[敎團]은 33 敎派가 合同한 公同敎會임으로 各敎派의 獨自的인

信仰告白이 없고 [敎義의 大要]를 信仰告白으로 代身했다

 

 教義の大要

本教団の教義の大要左の如し イエス・キリストに由りて啓示せられ聖書に於て証せらるる父・子・聖霊なる三位一体の神は世の罪と其の救いの為人となり死にて甦り給える御子の贖いに因り信ずる者の罪を赦して之を義とし之を潔め永遠の生命を与え給う、教会はキリストの体にして恩寵に依りて召されたる者礼拝を守り聖礼典を行い福音を宣べ伝え主の来たり給うを待望むものなり。

 


1942 년 12 월 15 일 . 第 1 回 日本基督敎團總會에서 部制는

廢止되었지만  日本 政府의 간섭과 압박은 더욱 더 심해졌다

牧師와 傳道師의 名稱도

[日本基督敎團][敎憲] 第9條에 依하여 正敎師와 補敎師로

公式 名稱이 바뀌고 ~

正敎師는 按手禮를 받은 者로.

protestant 敎會에서 說敎와 聖禮典을 執行 할 수 있고 

補敎師는 傳道의 准允을 받은 者로

說敎는 할 수 있으나 聖禮典은 執行 할 수 없게 規定하고 있다

우리 [敎團]에서는 平陽新里敎會를 擔任한 曺廷煥 牧師는

[正敎師]이지만

京城[서울]敎會를 擔當한 [昇山學洙]~<創氏> 傳道師는 補敎師로

聖禮典을 執行 할 수 없었음으로 [敎憲]에 따라 昇傳道師의 牧師{正敎師]

按手禮가 時急했다  그래서 ~나는

[日本基督敎團] [敎憲]에 依據~   1943 년 朝鮮nazarene敎

最初의 牧師로 昇學洙 牧使를 按手했다

 

 


            *昇學洙 牧師 按手禮 記念*

 

 

 

 

陪席한 按手委員으로는 鄭禧燮   千世鳳<光> 曺廷換 鄭在學 李聖壽 殷熙鳳

張成玉 牧師와 長老 代表로 三千浦 聖潔敎會의 孫珩圭 長老가 陪席

按手했다 ~< 當時 按手禮 寫眞 >

이로써 nazarene 敎會가 1938 년 宣敎地 朝鮮에 눈물로 뿌린 씨가

첫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다

 이로서 [敎團] 正敎師는 鄭禧燮 曺廷煥 昇學洙 세 사람이 되었다

 

曺廷煥 牧師는 많은 同役者 가운데

[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 ]란 말과  같이  ~

서로 뜻을 같이하는 友誼가 敦篤한  牧師다

내가 日本 豊橋 敎會를 新築할 때 敎會 執事로 ~어려울 때 마다 찾아와

같이 祈禱하고 慰勞하고 激勵 해 주었다 그리고  많은 物質을 奉獻하고

牧師 生活을 도왔다 그 후 나의 勸勉으로 獻身하여

京城 聖書學院을 마치고  [日本基督敎團]에서 牧師按手를 받고

nazarene 敎團에서 同役하게 되었다

그런 因緣으로 내가 視務하는 西城里<舊 新陽里>敎會와 曺廷煥 牧師가

擔任한 新里 敎會는 사랑의 끈으로 한데 묶은 公同敎會처럼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도왔다

敎會의 重要한 行事나 절기 때에는  主日 大禮拜를 마치고 主日 學生까지

全 敎人이 總 動員하여 相互 교회를 訪問하여 기쁨을 같이하고 祝福하며 ~

사랑의 禮饌을 나누었다

聖誕 前夜에는 氷板이 반짝반짝 diamond 처럼 별빛에 反射 되어 ~

아름답제 빛나는 大同江 鐵橋를 건너 ~칼 같은 겨울 바람에 옷깃을 세우며  

~男女老少 敎人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

손 잡고 christmas carol 을 기쁘게 불어며 往來했다

戰爭으로 매마르고 索漠한 우리들의 마음밭에 눈 송이처럼 포근한

平安의 瑥氣가 잠잠히 쌓이는 순간들이었다

曺廷煥 牧師에 대한 잊을 수 없는 회고는 ~

내가 集會를 위하여 出他 중 聘父님 喪을 당했다

火急히 連絡을 받고 달려온 曺牧師는 葬禮에 필요한 모든 準備를 대신

다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여름철이라 하루가 급했다 >

참 고마운 일이다

曺 牧師와 ~ 永遠한 離別은 ~1971 년 이다 

召天하기 몇 달 전 曺廷煥 牧師가 視務하던 尙州 화부 敎會에서

내가 心靈復興會를 引導 했는데 ~참 人生 無常을 느낀다

 

挽[funeral song ]

 


듣건데

그대 가셨다 하네

내 마음 놀라와라

밁은 물

푸른 산은

상주불변[常住不變]이나

인생은 두루 같지 이니함이여

 

나그네 길

잠시 머물다

떠나는 곳 저 세상

쉴만 한 곳 어디메뇨

 

가는 길

금빛 찬란한 새 하늘

영원한 천성 이로다

 

聞公之逝我心驚

綠水靑山共不平

泉臺何處停居宿

去則新天永遠城

 

西城里 敎會 在任 時 의 nonsense 한 토막  ~
敎會에서 골목 하나를  건너서 가까운 거리에  김성도 여인의 성주교회가

들어 왔다 이 교회를 새 주님 교회라고 불렀는데

그 이름의 유래가 재미 있다

김성도 여인은 삼백석꾼  부자였는데 병자들이 오면 창고에

멍석을 깔고 항상 함께 돌보며 등창이 난 환자는 입으로 고름을 빨아내고

병을 고처 주기도 하고 거지가 오면 손수 씻겨 옷을 갈아 입히고

음식을 주었다

남편 정씨는 김성도의 하는 일이 마음에 맞지를 않아 심하게 학대를

하고 꾸중을 했는대  임종시에 자녀를 모아 놓고

"네 어머니가 참 주님이다"한데서 [새 주님]이란 말이 발단이 되었다 

예배 시간에는 온 교인이

"역사 역사 새 주님을 역사  " "역사 역사 새 주님 교회를 역사"를

연발하며서 서서 노 젓 듯 행동을 하다가  

 나중에는 교회 바닥에 딩굴 딩굴 딩굴었다

그런데 문제는 새 주님 교회 신도가 우리 교회 신도를 迷惑하는 일이다

신유의 은사가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단 사설을 막기 위해 病弱한 信者들에게   주의를 환기 시키기도 했다

 

뒤돌아보면 ~

平陽은 風光明媚한 아름다운 고장이다

平陽 八景을 누가 말 하기를 

<을밀대의 봄 맞이 ><부벽루의 달 구경><영명사의 노을 빛 >

<보통강 나루의 행선인 ><대동강 뱃놀이><애련당의 빗물 소리>

<마탄 여울의 눈석이><대성산의 프른 숲>이 있고 ~

平陽 形勝으로는 九 景이 있는데

<만경대><을밀대><능라도><청류벽><추남대><봉황대>

<춘양대><추양대><동양대>를 指稱 한다고 했다  

나는 목회의 틈틈이 名勝地를 거닐 때

詩作에 대한  poetical inspiration 을 느껴 漢詩를 한 首씩 지어

說敎 note 의 餘白에 記錄해 두곤 했다  

 

 

 

 

 

 

  < 過 平壤 >  <  1  >

 

                       -정희섭 [鄭禧燮]

 

 

원래

기<箕>나라

성<城>으로

시작하여

만세 <萬世 >를 기 했으나

누구가 알았으랴

오늘 같은

창상지변<滄桑之變.을

 

강산<江山>은

그림이라

그리기가 어렵고

풍월 <風月>은

이미

시 <詩>라

어찌 또

감히 시 <詩>를 지으리오

 

천년의

유적은

누각 <樓閣>에 남아있고

고색 <古色>은

오히려

고목 <枯木>나무 가지에서

전 한다

 

석양 <夕陽>에

뜬 배는

부벽루 아래로

노를 지어

뱃 머리를 돌리는데......

 

비단결 같은

아름다운 강산 <江山> 사이로

 

돌아 오는 것을

한가롭게

누워서

바라 보노라

 

過平陽

 

元始箕城萬世期

滄桑今日有誰知

 

江山自畵難加畵

風月己詩不敢詩

 

千年遺跡殘樓閣

古色猶傳枯木枝

 

回棹斜陽浮碧下

臥看錦繡緩歸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