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禧燮 牧師

***정희섭 목사 <<평양 나사렛교회 송별 기념>>***

chung si yoo 4932 2017. 9. 26. 13:02



平陽 新陽里 나사랫<Nazarene>敎會 篇 [4]

 

日本은 戰爭 遂行에 國民 總力을 團合한 熱과 힘이 必要했다

모든 團體의 가지를 치고 뿌리가  하나가 되게 했다 <朝鮮 敎會도 例外

가 아니 었다>日本 基督敎團에 統合된 朝鮮 各 敎團 에서는 대표를~ 

1941 년 6 월 24 일 日本 [후지미 마찌 敎會[富士見町教会]에서 開催한 創立総会에 派送했다。創立総会는 기미가요 「君が代 斉唱」、「宮城遥拝」、「皇軍兵士를 위한 黙祷」、「皇国臣民 誓約」의 国民儀礼로서 開始되었다。創立総会는「우리는 基督教 信者인 同時에 日本臣民임으로、皇国에 忠誠을 디 할 것을 第一로 함 」이라 宣誓。日本基督教会 大会議長인 富田満牧師가 教団 統理者로 就任。教団 統理는 宗教団体法에 基準하여 権限이 주어젔는데 、勅任官 待遇이였다

 

 

이 때 朝鮮 敎會 중 第一 큰 敎團인 長老敎會는 一部 指導者가 日帝의 彈壓과 威脅에 屈服 하고 變節者로 앞장 서서 附日 協力하며 背敎 行爲를 恣行 했다 

日本政府가

神學과 敎理의 <神論><人論><基督論><救援論><敎會論><終末論.>을 事實과 다르게 歪曲 變造하고 聖經에서 舊約과 요한 계시록을 제거하여 新約  聖經만 敎會에 가지고 오게 하고

讚頌歌와 復興聖歌<聖潔敎會와 나사렛 敎會에서 使用>에서 <再臨><復活><創造와 攝理><天國><奮鬪와 勝利>등을 칼로 찢어 削除하여 부르지 못 하게 禁止 하는데 同意 協助했다

그리고 長老敎 總會長은 [轉向 聲命書]를 發表하고 新義州에서 開催한 長老敎 總會에서는 敎會 組織을 戰爭 補助 system으로 改編하고 聖戰[?] 遂行을 위한  報國 獻金을 決議하여

1937 年부터 1940 年까지  3年 동안 158 만원을 헌금했다

 

그리고 鄭仁果 牧師는 長老敎 敎徒 [愛國機 獻納  期成會]를 組織하고

1942 年, [朝鮮長老號]인 [海軍 艦上 戰鬪機]1 機와 機關銃 7 挺 構入費 15 萬 317 圓  50 錢을 日本 政府에 獻金했다

 

日本基督敎團] 은

1943年11月25日-26日 日本基督教団 第2回 総会가 東京鷺宮 日本東部神学校에서 開催되었다。

平松実馬가 軍用機 献納 決議案을 提出하여、教団総会는 軍用機 献納 運動을 決議 했다。「날아라 ![飛べ日本 基督教団号]」의 slogan 아래 募金한 献金으로 日本海軍에「報国3338 第一日本基督教団號」「報国3339 第二日本基督教団號 九九艦爆」을、日本陸軍에「愛国第三三三一 日本基督教団第一」「愛国第三三三二 日本基督教団第二」의 四機의 軍用機를 献納했다 。또 金城女子専門学校는日本基督教団의 要求로

海軍에「報国2629 金城女専号」를、陸軍에 3万円을  献納했다

 

 

日本은 戰爭의 勝利를 위하여 狂犬처럼 亂暴하게 날뛰며 手段과 方法을 가리지 않고  敎會가 行하는 모든 行事를 물어뜯고 惡辣하게 妨害하고 干涉했다 

그 中에서도 특별히 神社 參拜와 天皇 崇拜를 눈에 불을 켜고  强勸했다   

朝鮮 敎會와 牧師들에  대해선 때에 따라  銃劍으로 威脅하기도 했지만  

[內鮮一體]란 美名 아래 日本 天皇은 모든 사람을 平等하게 보고 똑같이 사랑한다는 ~[一視同人]이란 宥和 政策을 使用하기도 했다

朝鮮人을 日本 이름으로 創氏 改名하게 하고 日語를 國語로 使用하게 하여  日本 國民으로서의 pride를 가지고 戰爭에 協助 하도록 했다

日本 警察은 일주일에 한 번 하던 敎會 査察을 시도 때도 없이 거의 매일 교회에 와서 無聊하면 

그래도 미안 했던지 나에게 허락을 얻어 풍금을 자주 치기도 했다 피눈물도 없는 無賴한 [outlaw]日本 刑事이지만 매일 같이 만나고 對話를 하다보니 인간적인 感情의 疏通을 통하여 敎會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나에게 대한 態度도 親和的으로 달라졌다

<說敎 檢閱>< 神社參拜>< 國防獻金>< 東方遙拜> <鍮器 供出>에 對한 强要가 潛潛해지고 어느날 나에게 대한 중요한 情報를 흘렸다 샌새이[先生]~<당시에는 목사를  샌세이이라고 불렀다>고마리마시따내

<난처하개 되었습니다 >로 시작한 그의 은밀한 말은 ~~

당신이 nazarene 교 미국 선교사인 Eckel 목사에게 일본의 전쟁 기밀을

빼돌려 spay 행위를 하고 戰爭에 非生産的인 敎會堂을 建築하고  復興會 引導와 傳道 活動 으로일본의 [神道政策]~<天照大神을 여호와 하나님을 다스리는 神으로 無所 不能의 最高의 神으로 崇拜함>인 [國敎]를 업신여기고  民心을 攪亂한 罪로  얼마 후에  逮捕 拘禁하고 敎會는 廢鎖하여 愛國 團體의 會場으로 使用 한다는 것이다 참 놀라운 일이다 그러니 敎會와 信徒들을 살리는 길은 목사님이 이 교회를 하루 빨리 떠나라는 것이였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한 마디 添附하기를 <나도 기독 교인 입니다>

~참으로 situation 의 急迫함을 認知하고~

붙잡고 매달릴 길은 기도 밖에는 없었다

그날 밤 부터 徹夜 祈禱를 시작 했다

주여 어찌 하오리까 ?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갓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 3 : 16>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 : 10>

神奇한 일은 기도 중 자꾸 떠오르는 교회가 있었다

일년 전 復興會를 引導한 [三千浦 聖潔敎會]다 

그저 덮어 놓고 삼천포 교회를 축복하고 기도했다 

일 주일이 지난 후 갑자기 삼천포 교회 孫珩圭 長老가 平陽에 왔다

교회 대표로 목시님 請聘하러 왔다는 것이다

聖靈님의 교통 往來하심을  통하여 以心傳心으로  기도가 相通한 것이다

목사님 便紙로 連絡하면 안 오실 것 같아 直接 왔으니  移徙짐을 꾸리라는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교회는 靑天霹靂으로 얼마나 衝擊이 컷든지 교인들은 울고 불고  야단이 났다

性急한 교인은 짐을 못 꾸리게  籠城을 하며 移徙를 막았다 

그러나 이사는 旣定化되고

정들었던 西城里 敎會를 떠나는 날

送別 禮拜는 沈痛했다

 

우리 다시 만나 볼 동안

하나님이 함께 계셔

훈계로써 인도하며 도와주시기를 바라네

  ~涕泣이 사작 되고

다시 만날 떄 다시 만날 때 예수 앞에 만날 떼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그 때까지 계심 바라네

~참았던 눈물이 찬송가에 흘러 옷깃을 적셨다

離別이란 슬픈 것이다

赤手로 눈물과 기도와 땀으로 새운 교회의 하나님의 신실한 동역자 들이다

뒤돌아 볼 수록 아쉬운 정에

나도 눈물을 주체 할 수 없었다

 

예배를 마친 후 空襲 待避 防空 訓練이 있어서  교회당 건물 앞에서

송별 사진을 찍지 못하고 큰 도로에 나와 大同旅館 앞에서 송별 사진을 撮影했다


 

 

 

1945 년 8월 15 일 해방 후  平陽 市街地 區劃 整理와 6. 25 戰亂으로

禮拜堂 建物의 存廢 有無를 알길이 없다

~당시 奉獻한 敎會 寫眞 한 장이라도 남아 있었더라면~

~너무나 아쉽다

 

episode 한 토막

平陽驛에서

汽車는 가자고 목메어 울고  ~ 전송나온 성도들은 손을 흔들고 ,

기차는 엉금 엉금 ~증기를 내뽐으며 서 서히 出發을 하는데

김영수 집사가 헐래벌떡 숨을 모라쉬며 뛰여 왔다 

손에 키보다 더 큰  선물을 들었다  

목사님 거울입니다 

거울은 매일 보는 것이니 볼 때 마다 ~

교회와 저희들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참으로 難堪했다
기도는 매일 할 수 있는데 

이 큰 荷物을 기차에 실고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선반에 얹을 수도 없고 종일 껴안고 갈 수도 없고 거울만 세워 둘 수가 없는 것이다

거울은 破損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감사함으로 거울을 껴안았다 앞에 앉은 승객의 얼굴도 볼 수 없고

기차가 停車할 때 乘下車하는 사람도 볼 수 없기에 밤새도록 거울만 안고 교회와

성도들과 거울을 선사한 김영수 집사를 위해 기도 했다

기도 받는 방법도 稀罕했다 ㅎㅎㅎ...참으로 good idea다

 

~**波瀾萬丈 했던  平陽 西城里 敎會를 떠나며  ~**

    [鄭禧燮 牧師의  平陽 나시렛敎 [1][2][3][4]編을 마친다 ]